[제주공항 운항 재개] ‘2박3일 공항노숙’ 악전고투 현장
“우유 주세요” 늘어선 줄 25일 제주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과자와 우유를 나누어 주고 있다.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 이날 공항에 탑승객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등에서는 빵 과자 등 식료품이 동이 났다. 한라일보 제공
○ 탑승객 대기 시스템 엉망
“우유 주세요” 늘어선 줄 25일 제주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과자와 우유를 나누어 주고 있다.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 이날 공항에 탑승객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등에서는 빵 과자 등 식료품이 동이 났다. 한라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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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직원이 대기번호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승객의 응답이 없으면 그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는 일도 잦아 곳곳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백기동 씨(25)는 “수백 명이 여행가방을 실은 카트를 밀고 줄을 서면서 공항 내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통신이 두절되는 일도 있어 모두가 극도로 예민해졌다”고 전했다. 김은호 씨(30·여)는 “대기 순서대로 기다리다간 이번 주말에야 제주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카운터는 비교적 한산했다. 결항 승객들에게 문자로 대기번호를 안내하고 탑승 시 3시간 전에 문자로 공지했기 때문이다.
○ 음식·전기·숙소 찾기 ‘전쟁’
폐쇄 사흘째였던 25일 오전 공항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섰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냄새나는 화장실 입구 바로 앞까지 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수백 명이 사용한 세면대에는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간밤에 사람들이 배달 주문한 찜닭과 피자, 치킨 등 음식물쓰레기와 박스들이 화장실에 나뒹굴었다.
윤모 씨(30)는 “기본적인 양치질과 세수만 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며 “며칠째 머리를 감지 못해 냄새 때문에 신경이 너무 쓰인다”고 말했다. 윤 씨는 “어젯밤 비상구 계단 쪽에서 노숙했는데 바람 때문에 새벽에 너무 추웠다”며 “제공받은 담요가 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급기야 제주도는 이날 공항 근처 사우나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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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이 엄두가 나지 않아 겨우 공항을 벗어났던 사람들은 숙소를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기주 씨(38)는 “메뚜기처럼 숙박 가능한 업소를 찾아서 헤맸다”며 “소셜커머스에서 1박 단위로 방을 구하면서 겨우 잠을 잤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자영 씨(26·여)는 “인터넷에도 없는 낡은 모텔을 수배해 겨우 방을 얻었다. 모텔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빈방을 찾아다니며 하루씩 지냈다”고 언급했다.
○ 바가지 상혼 ‘눈살’
‘재난급’ 상황 속에서 어김없이 바가지 상혼도 극성을 부렸다. 이정원 씨(31)는 “공항에서 노숙한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세 줄에 1만 원을 내고 얇은 김밥을 사먹었다”고 전했다. 이성희 씨(47)는 “택시 기사에게 1시간 거리인 협재까지 가겠다고 하니 10만 원을 부르더라. 공항 밖까지만 나가는 데도 5만 원을 불렀다”고 말했다. 김모 씨(29)는 “렌터카 계약 기간을 연장하려고 하니 가격이 두 배였다. 무료였던 스노체인도 2만 원의 대여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 / 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