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정책硏 재소자 307명 설문
조폭을 소재로 한 몇몇 영화를 보면 이들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돈을 펑펑 쓰는 등 화려한 세계에서 사는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조직범죄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 운영 실태와 정책대안 연구’를 보면 실상은 크게 달랐다. 연구원은 지난해 전국 교정기관에 재소 중인 조직사범 307명을 설문조사하고 이 중 41명을 심층 면접해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 조직폭력배는 “영화를 보고 제 발로 걸어오는 애들도 있지만 비전도 없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탈퇴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 “돈 없는 선배 밑에서 고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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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도 ‘스펙’이 필요하다. 수도권의 한 조직은 ‘25세 이상, 전국 규모 폭력조직에서 활동한 전력, ○○ 일대에서 활동한 폭력배’로 선발 기준을 정하기도 했다. 가입 후에는 숙소 생활을 해야 한다. 소속감을 기르고 명령 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선배의 양말을 빨게 하거나 수시로 매를 들기도 한다. 단합을 강조하기 위해 반대파와 축구 경기도 한다.
심층 면접에 응한 조폭들은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30대 초반 조폭은 “멋있게 보여 시작했지만 들어온 뒤에는 기대와 현실이 너무 다르고 힘들어 많이 도망가거나 그만둔다”고 전했다.
○ 월 100만 원 벌기도 힘들어
조폭 세계도 양극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월 500만 원 이상 번다는 응답자 비율이 20.8%에 달했지만 36.6%는 월수입 100만 원 이하라고 했다. 특히 신입 조폭은 ‘열정 페이’에 가까웠다. 일정한 수입 없이 선배의 심부름을 하고 용돈을 받는 식이다. 부산 출신의 30대 중반 조폭은 “심부름하고, 대신 징역 살아주고 돈을 번다”고 전했다. 양극화가 심각한 이유는 경제적 문제를 각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해도 조직에서 자금을 지원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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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팀은 “시민 생활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큰 단체를 폭력단으로 지정해 관리 통제하는 일본처럼 조폭 출신에 대한 취업 제한이나 인허가 제한 등 조폭의 변칙적 사업을 제지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