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힐 때 ‘어처구니없다’ 혹은 ‘어이없다’고 한다. ‘어처구니’와 ‘어이’는 무슨 뜻일까. 사전은 어처구니를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 부분’ 또는 ‘궁궐이나 성문 등의 기와지붕에 얹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인형)’라는 이도 있다.
‘어이’는 어처구니와 같은 뜻으로 어처구니처럼 ‘-없다’와 함께 쓴다. 지난해 영화 관객이 1위로 꼽은 명대사는 관객 1300만 명을 기록한 ‘베테랑’의 “어이가 없네”였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어처구니의 어원은 모호하지만 지역에 따라 ‘얼척’(경상, 전남 방언)이나 ‘얼처구니’(경남)로 쓰이는 것을 보면 본래 어형은 ‘얼척’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본다. ‘얼척’에 접미사 ‘-우니’가 붙어 ‘얼처구니’가 되고 ‘ㅊ’ 앞에서 ‘ㄹ’이 탈락해 어처구니가 됐으리라는 추정이다.
전혀 근거가 없어 허황하다는 뜻의 ‘터무니없다’도 재미있다. ‘터무니’는 본래 ‘터를 잡은 자취’란 뜻이었는데 ‘정당한 근거나 이유’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터무니없는 거짓말’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터무니도 거의 ‘-없다’와 결합해서 쓴다.
‘터무니없다’와 비슷한 말이 ‘턱없다’이다. ‘턱없다’의 ‘턱’은 ‘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까닭이나 이치’를 말한다. 그래서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이치에 맞지 않아’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요즘 ‘턱도 없다’ 대신에 ‘택도 없다’라고 쓰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틀린 말이다. 허나 ‘택도 없다’가 훨씬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말맛의 차이는 크다. 현대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는 좋은 예가 될 듯도 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