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참회록]<1>이한구 의원 “2012년 정부에 무상보육 강행 주문… 대선票 의식해 건전재정 소신 꺾어”
이 의원은 선거 앞에 장사는 없었다고 했다. “돈 있는 집 애들 무상보육 한다고 재정을 소진해선 안 된다”며 ‘공짜 공화국’ 비판에 날을 세우던 스스로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야당이 새로운 공약을 내놓으면 우리 당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엉뚱한 게 나오게 돼 있습니다. 집권하려면 무슨 짓이든 못 해요.” 그는 겸연쩍은 듯 한쪽 목을 쓸어내렸다.
이 의원은 “첫 원내대표로서 첫발부터 잘못 내디뎠다”고 털어놓았다. 전문성을 따져야 할 상임위 배분에서부터 ‘나눠 먹기’ 관행을 깨지 못했다는 것. “당에서 상임위원장 자격이 되는 3선 21명을 먼저 지역별로 나누고 그 다음 당선 횟수, 나이 순(順)으로 세워 결정한 거예요. 대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날까 봐 원칙대로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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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최악의 ‘불량 국회’라는 오명을 쓴 ‘19대 국회의원 4년의 참회록’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 “선진화법에 국회 골병… 아차 싶었다” ▼
이한구 의원은 2012년 5월 당시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인기 없는 원내대표’였다. 19대 총선에서 갓 당선된 의원들에게 ‘특권 내려놓기’를 요구한 탓이다. 의원들은 당시 사석에서 “친박(친박근혜) 완장을 차고 ‘꼰대’처럼 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당시 쇄신안 중 일부만 해결됐어요. 여야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 않은 거죠. 그나마 진도가 나간 것도 그해 12월 대선을 치르고 나니 도로아미타불이 됩디다.”
특히 당시 국회 원 구성 협상이 지연되면서 27일이나 지각 개원하자 이 의원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비 반납을 강행했다. 주위에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선거 비용을 조금 더 썼다고 생각하자”며 달랬지만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 의원은 “아마 선거 때 ‘그 돈 안 쓰면 떨어진다’고 했으면 몇 배라도 더 썼을 것”이라며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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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후회하는 게 국회선진화법을 찬성한 거였습니다. 그때는 19대 국회쯤 되면 국민 눈이 있는데 야당이 대놓고 발목을 잡겠나 싶었는데, 아주 나이브(순진)했죠.”
이 의원은 “야당이 선진화법을 정략적으로 계속 악용하려 들면 국회만 골병이 든다”고 지적했다. 합의 처리된 법안을 들여다보면 살점은 다 뜯기고 뼈대만 남은 게 많다는 얘기였다.
그가 20대 총선 불출마를 결심한 배경에는 무능과 포퓰리즘의 수렁에 빠진 국회에 대한 자성이 있다. 여기에 ‘시간 먹는 하마’와 같은 지역구 활동에 대한 회의도 한몫했다.
“허구한 날 육체노동만 하고 있는 겁니다. 동네 아주머니들 탄 관광버스 뒤꽁무니에 손 흔들고, 상가(喪家)를 돌며 술 얻어먹고. 국회의원이나 구의원이나 하는 일이 다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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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내 상황을 놓고 “이념이 아닌 친소 관계로 움직이고 있다”며 패거리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본 친박계는 어떨까. “분명히 이념을 중심으로 뭉쳐진 집단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의원은 “사실 여당에서 친박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박근혜 정부가 잘 안되면 자기가 손해인데 ‘도움을 줬다, 아니다’로 가르면 인재 운용의 풀을 좁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인터뷰한 다음 날 “못한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걸어 왔다. “지난 대선 때 같이 해보니 (계파가) 애매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합디다. 지금은 구별할 필요가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친박인 사람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 만들기 나름이죠.”
이한구 의원은 재무부 이재과장,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거친 4선 의원(71).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며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 등을 지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