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네시스 EQ900 카달로그
이달 초 현대자동차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번째 모델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를 출시하며 카달로그와 보도자료에 2개의 서로 다른 연비 측정값을 표시했다. 앞서 지난 9월 출시된 6세대 신형 아반떼(프로젝트명 AD) 역시 2개의 연비를 사용하고 있다.
EQ900와 신형 아반떼의 연비에는 ‘정부 공동고시 연비’ 혹은 ‘정부 신고 연비’와 ‘기존 연비 측정 기준’ 혹은 ‘구연비 기준’이란 단어들이 사용돼 각각 다른 값들이 뒤섞였다. 특히 트림별, 타이어 크기에 따라 도심·고속·복합으로 나뉘고 공동고시 연비와 구연비 기준으로 나눠진 데이터들은 평균 기본 3가지 트림이 존재하는 까닭에 장황한 표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 EQ900 3.3T-GDi 2WD 5인승 차량의 연비는 18인치 타이어 장착 기준으로 공동 고시 연비가 도심 7.2km/ℓ, 고속 10.6km/ℓ, 복합 8.5km/ℓ이다. 또한 기존 연비 측정 기준으로는 도심 7.6km/ℓ, 고속 11.2km/ℓ, 복합 8.9km/ℓ로 표시됐다. 2가지 측정 기준에 따른 차이는 빠졌고 ‘최근 강화된 연비 측정 방법으로 인해 연비가 하향되었다’라는 간략한 부연 설명 뿐이다. 실제로 공동고시 연비 측정 시 기존보다 평균 5.0%P 하향 됐음은 알 수 있다. 이들 차량에 유독 2개의 연비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그동안 부처 간 중복조사와 조사결과 불일치 등의 혼선을 빚어 왔던 자동차 연비의 중복규제를 없애고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연비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공동고시 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공동고시의 배경에는 지난해 현대차 싼타페와 쌍용차 코란도 스포츠의 연비 과장 결과를 두고 국토부와 산업부 간 힘겨루기가 발생하자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연비 사후관리가 국토부로 일원화 된 것이란 판단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유야 어떻든 국토부가 연비 사후 검증을 담당한 이후 자동차 연비는 줄줄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기존과 달리 연비 검증 시 차량 길들이기 절차와 주행저항시험방법에 관한 규정이 포함됐고 휘발유의 경우 고정값 대신 성분 분석 후 실제값을 사용토록 계산식을 변경하는 등 깐깐해진 기준 탓이다.
사진=한국에너지공단은 공동고시 신차에도 이전 연비 라벨 사용 중
국토부는 또한 도심연비와 고속도로연비 모두 신고연비와의 차이가 허용 오차범위 5% 이내에 들어야 적합 판정토록 하며 기존 복합연비 만이 오차범위를 넘지 않으면 됐던 규정을 강화했다. 이 결과 자동차 제작사와 수입사의 연비는 하향 신고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달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공동고시 연비가 2014년 11월 이후 출시된 신차에 우선 적용됐다. 기존차량들은 2년 6개월의 유예를 거쳐 2017년 5월에 적용될 예정이다. 현대차의 경우 아반떼와 제네시스 EQ900가 신차로 등록돼 공동고시 연비가 적용됐다.
문제는 공동고시 연비와 기존 방식의 연비로 측정된 차량들이 시장에 혼재하며 업체는 물론 소비자 혼란이 가중 되고 있다는 것. 공동고시에 따라 자동차 연비 표시라벨이 바뀌며 실제 차량에선 둘의 구분이 가능 하지만 인터넷과 카탈로그 상에서 이를 구분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자동차 연비를 조회해 볼 수 있는 한국에너지공단 사이트에는 새롭게 공동고시 연비로 측정된 차량임에도 여전히 예전과 동일한 표시라벨을 사용하는 등 정부 조차 제대로 된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제네시스 EQ900와 신형 아반떼를 출시하며 궁여지책으로 공동고시 연비와 기존 측정값을 혼용해 사용했다. 일부 수입차 업체는 특별한 설명 없이 공동고시 연비만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표시법에서든 제대로 된 설명이 부족해 소비자 입장에선 의아하고 복잡해 보일 뿐이다.
사진=지난 11월 도입 된 새로운 자동차 연비 표시 라벨을 부착한 쌍용차 티볼리 디젤 4W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