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로지 ‘0’이라는 공평한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0’이 아니라 누구는 ‘0’이고 누구는 ‘90’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그릴 수 있는 그림 실력이 안타까운 지경이라는 자책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리스타트’(이수진·클라우드나인·2015년) 》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은 꽤나 이상한 경험이다. 그것이 서랍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든 정제 과정을 거쳐 공개가 된 것이든 마찬가지다. 위에 쓰인 날짜, 정확히 그날 하루에 그 사람이 살았던 시간과 했던 생각이 박제돼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몰아 쓴 자서전과는 다르다. 일기에서는 기억이 미화되지 않는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37)의 기록에도 그날그날의 날짜가 적혀 있다. 어느 여름 새벽 5시 59분엔 “오늘 일을 마치고 조금 있으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또 다른 하루의 경계에 서 있는 나는 설렌다”고 썼다. 또 어느 가을날 오후에는 “이 터널을 지나면 분명 사람들 살아가는 세상이 나올 것인데 터널은 길기만 하다”며 방황한다. 28세에 사장이 된 사람이 좋은 날 궂은 날에 느껴온 감정들이 그대로 스며 있다.
야놀자는 2005년 모텔 정보를 올리는 사이트로 시작해 10년 만에 연매출 350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름 때문에 “야놀자 대표님 얘기 많이 들었는데 엄청 미인이시라면서요”라는 ‘아는 체’를 많이 당하지만 이 대표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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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대표가 적은 ‘공평한 공간’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자신이 왜 ‘0’에서 출발해야 했는지 수없이 생각해 봤을 사람이 쓴 표현이라는 점에서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쓰면서 그 순간에 그가 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