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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동서남북]‘갑질 행정’ 비난 자초한 부산진구

입력 | 2015-12-21 03:00:00


강성명·부산경남취재본부

“소송을 내면서 어느 정도 ‘갑질’을 당할 걸로 예상했습니다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죠.”

부산 부산진구 공립어린이집 원장 조모 씨(60·여)의 하소연은 절절했다. 조 씨 등 공립어린이집 원장 2명이 구청을 상대로 법적 투쟁 중이다.(본보 18일자 A18면 참조 )

이들이 반년간 겪은 구청과의 갈등은 ‘불통 행정’의 전형이다. 이들은 공립어린이집 원장 정년을 60세로 규정한 조례가 불합리하다며 구청에 수차례 탄원서를 냈다. 부산 16개 구군 중 공립어린이집 원장의 정년을 조례로 규정한 곳은 불과 3곳뿐이다. 나머지 2곳은 정년을 65세로 규정하고 있다.

2009년 대법원이 서울 중구의 유사한 조례와 관련해 내린 판단을 근거로 조례의 위법성을 주장했지만 구청은 대법원의 판결은 이 문제와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해석했다.

원장들은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는 해당 조례를 개정하거나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부산진구는 “권익위의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며 무시했다. 부산시도 법제처에 문의한 결과 원장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 공무원이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얼버무린 것처럼 부산진구의 대응은 ‘특정인을 찍어 누른다’는 의혹을 살 정도로 도가 지나쳤다. 귀를 막은 부산진구는 결국 정년 문제를 내세워 어린이집 2곳의 위탁 공모를 진행했다.

해당 원장들은 법원에 조례 무효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공모 절차 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공립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구청의 대대적 행정지도 점검과 학부모공청회가 이어졌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통상 7일 전까지 조사대상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들은 구청이 수차례 이 조항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구청 측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 직원은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 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일반적인 행정지도 감독일 뿐 보복성 행정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행정의 근본은 ‘법을 통한 위민(爲民)’이다. 관(官)이 이를 거스르고 힘을 과용하면 주민의 삶은 무너진다. 조례의 위법성 유무를 최종 판단하는 법원의 결정을 보고 법을 집행해도 늦지 않다. 기존 공립어린이집 위탁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절차 자체를 손보면 된다.

한 원장은 구청 담당 국장과의 면담 과정에서 심한 인신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건은 무효 소송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구청의 불통 행정과는 달리 법원은 최근 행정소송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이들이 원장으로서 임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정했다. 부산진구는 주민과의 ‘소통’보다 ‘갑질’의 권한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강성명·부산경남취재본부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