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찾아온 정년연장]<上>정년연장의 빛과 그림자 “계속 일하면 가계에 도움”… “현실은 퇴직 재촉하는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내년에 정년이 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긴장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다. 300인 이상 모든 사업장은 내년 1월 1일 의무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해야 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많은 직장인은 정년연장의 혜택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금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데 늘어나는 정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때의 연령은 평균 49세에 불과했다. ‘60세 정년’이 직장인들에게는 의무휴가 제도나 육아휴직 제도처럼 또 다른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에는 이런 냉소가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정년연장으로 인건비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기업들이 오히려 나이든 직원들의 고용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법을 바꿔놨더니 오히려 일찍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최근 기업 인사담당자 313명을 설문한 결과 정년연장을 한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금 조정’(34.2%) ‘명예퇴직 등 인력 조정 확대’(33.5%) ‘비정규직 채용’(29.4%) 등의 조치를 도입했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대기업 사무직이나 금융업종과 달리 생산·기능직 등 숙련도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정년연장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충북 음성군 풀무원 공장에서 일해 온 박영란 씨(56)는 지난해 12월 정년퇴직을 앞뒀지만 회사가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계속 일터에 남게 됐다. 박 씨는 “한창 나이에 집에 가야 한다니 우울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럽고 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늘어난 정년에 맞게 빠른 승진을 마다하고 ‘가늘고 길게’ 직장 생활을 하려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나이든 직장인들 가운데 ‘후배 상사’를 모시는 경우도 이젠 드물지 않은 풍경이다.
경기 침체기의 정년연장은 기업들의 신규 채용을 억제해 직장 전체의 고령화를 유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나중에 비용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활용을 늘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시행하기로 한 정년연장을 미루거나 되돌릴 수는 없는 만큼 노사정이 위기의식을 갖고 ‘정년 60세’ 제도의 안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체계 개편이 어려운 기업들, 정년연장에도 청년고용을 늘리는 기업들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정년연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각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이건혁·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