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사정은 이랬다. 이공계 대학원에 입학한 한 연구자 지망생이 교수에게서 지속적으로 폭언을 들었다. 교수는 연구 실적을 압박하며 수시로 험한 말을 내뱉었고 제자는 저항하지 못했다. ‘인간말종’ ‘테러리스트’ 같은 말이 여러 차례 튀어나왔다. 때때로 제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했지만 대개 금세 제압당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결국 제자는 면담 때마다 조금씩 대화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를 기자에게 알려줬다. 이 일을 겪은 제보자는 결국 과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온갖 종류의 ‘갑질’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요즘이지만 대학원, 특히 이공계 대학원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은 그 목록에 들지 못하고 있다. 사제지간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냥 사제지간도 아니고,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거의 도제식 밀착 지도를 받는다. 게다가 교수는 연구 과제를 통해 학비 걱정을 덜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졸업 뒤에는 진로에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이런 요인이 겹쳐 대학원생은 교수가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폭언을 해도 저항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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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65%)는 그냥 참고 있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불이익이 두려워서(49%) 혹은 애초에 해결을 기대하지 않아서(44%) 이들은 침묵해 왔다. 권력이 교수에게 집중된 좁은 실험실 분위기에서 초년의 연구자이자 학생인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단초다. 일단 실험실을 지키는 대학원생에게도 보호할 인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 뒤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 담당 기자는 여러 전문가와 피해자들을 만난 끝에, 학업 포기 비율 등 연구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대학원생의 선택권을 보장할 것과, 당사자들의 갈등을 완화해 줄 중재자 제도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갑질’을 하는 교수에게 꼭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 다수의 의견이었다. 자신의 행위가 대학원생에겐 부당한 억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걸 세련되게 풀어나갈 기술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행복한 실험실이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