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신작 ‘아비. 방연’
국립창극단 ‘아비. 방연’에서 주군으로 모시던 단종(앞)에게 사약을 전달한 뒤 왕방연(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울부짖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의 신작 ‘아비. 방연’은 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충(忠)으로 모시던 단종에게 사약을 전달하는 신하 왕방연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서재형 연출가와 한아름 작가 부부가 ‘메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도전하는 창극이다. 주인공 왕방연은 실존 인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뒤 단종을 강원 영월로 귀양 보낼 때 그를 호송했던 금부도사다. 훗날 수양대군의 명령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바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느 역사서에서도 단종에게 충성을 다했던 왕방연이 왜 사약을 바치는 역할을 맡게 됐는지를 전하지 않는다.
창극 ‘아비. 방연’은 바로 이 역사의 공백을 다룬다. 한아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왕방연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그의 딸 ‘소사’가 있다. 수양대군을 주군으로 모시는 한명회는 단종의 충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계략을 세운다. 특히 왕방연에 대해선 그의 딸 소사가 단종 복위 운동에 나선 송석동과 혼례를 치른 것을 빌미로 삼아 소사를 죽이거나 공신의 노비로 삼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소사를 죽여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압박한다. 결국 왕방연은 딸을 살리고자 수양대군 측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극의 주제인 ‘부성애’를 부각시키는 건 역시 창극단 단원들의 애절한 ‘소리’다. 왕방연 역의 최호성의 소리와 연기가 인상적이다. 누구보다 의롭고 착한 심성을 지닌 왕방연이 딸의 목숨을 구하고자 단종에게 충성한 신하들의 삼족을 멸하라는 한명회의 명령을 이행하는 장면에서 최호성의 연기는 돋보였다. ‘부성애’와 ‘어긋난 소신’ 사이에서 큰 갈등에 휩싸인 왕방연의 심리를 과하지 않으면서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딸 ‘소사’를 놓고 “소사야. 너는 내 복이다”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왕방연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끔찍이 여기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5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02-2280-411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