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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승 9단 “이창호 이세돌 9단처럼 패배 후 울었던 적 없어”

입력 | 2015-12-01 14:24:00


“박정환 국수를 이기는 건 기적이죠. 하하.”

조한승 9단(33)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는 듯 씩 웃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인근에 있는 ‘한종진 도장’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조 9단은 한종진 김주호 9단 등과 함께 도장 사범 일을 맡고 있다.

조한승은 지난달 제59기 국수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세돌 9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도전권을 따내 박정환 국수와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5일 경남 합천 정원테마파크에서 열리는 1국을 시작으로 도전 5번기가 진행된다.

지난 58기에서 국수였던 조 9단은 도전자 박 9단에게 1대3으로 졌다. 이번에도 수치상으로 조 9단이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1일 현재 국내 랭킹에서 박 9단은 1위, 조 9단은 16위다. 올해 전적도 박 9단은 50승 18패인데 조 9단은 37승 21패에 그쳤다.

“지난 도전기 대국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세밀한 수읽기가 필요한 대목에서 제 생각에만 갇혀 쉽게 단정짓다보니 뜻밖의 수에 당한 적이 많았어요. 이번엔 보다 치열하게 둘 겁니다.”

겉으로는 몸을 낮췄지만 한번 온힘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내심이 엿보였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조 9단은 전투보단 조화를 중시하고 유연한 기풍을 갖고 있다. 그래서 초일류로선 늘 2% 부족하다는 얘길 들었다. 이른바 승부사 특유의 독기(毒氣)가 없다는 것.

“이창호 이세돌 9단도 큰 승부에 지고 분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는데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 보다 눈물 흘린 적은 있어도요. (웃음) 패배의 아픔도 쉽게 잊는 편이구요.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근데 성적이 안 좋은 건 성격이나 기풍보다 공부가 부족해서 그래요.”

외양은 늘 공부만 할 법한 모범생 스타일인데 실제로는 좀 달랐나보다. 어쩌다 그가 연구실에서 기보라도 놓을라치면 동료들이 “수년 내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놀릴 정도라는 것. “제가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동료들에게 ‘노는 것도 다 공부다’라고 변명처럼 얘기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틈틈이 기보 보고 어울려서 연습 대국도 두는 등 여유 있게 공부해야 능률이 나는 거 같아요.”

한국 바둑이 중국 바둑에 밀린다는 우려가 많다고 했더니 조 9단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층이 얇은 건 맞지만 실력은 큰 차이가 없어요. 3,4년 전에 비해 국내 신예기사들 실력이 많이 올라왔어요. 신진서 신민준 이동훈 민상연 또래들이 조금만 더 있으면 지금 중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커제 9단과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대학(한국외대)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할 거라고 한다. 여자친구가 뒤늦게 공부하는 것을 기다려주느라고 늦었다고.

“드물지만 기적은 일어나잖아요. 국수 타이틀을 결혼식 선물 중 하나로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가 또 한번 씩 웃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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