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국수를 이기는 건 기적이죠. 하하.”
조한승 9단(33)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는 듯 씩 웃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인근에 있는 ‘한종진 도장’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조 9단은 한종진 김주호 9단 등과 함께 도장 사범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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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8기에서 국수였던 조 9단은 도전자 박 9단에게 1대3으로 졌다. 이번에도 수치상으로 조 9단이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1일 현재 국내 랭킹에서 박 9단은 1위, 조 9단은 16위다. 올해 전적도 박 9단은 50승 18패인데 조 9단은 37승 21패에 그쳤다.
“지난 도전기 대국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세밀한 수읽기가 필요한 대목에서 제 생각에만 갇혀 쉽게 단정짓다보니 뜻밖의 수에 당한 적이 많았어요. 이번엔 보다 치열하게 둘 겁니다.”
겉으로는 몸을 낮췄지만 한번 온힘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내심이 엿보였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조 9단은 전투보단 조화를 중시하고 유연한 기풍을 갖고 있다. 그래서 초일류로선 늘 2% 부족하다는 얘길 들었다. 이른바 승부사 특유의 독기(毒氣)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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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은 늘 공부만 할 법한 모범생 스타일인데 실제로는 좀 달랐나보다. 어쩌다 그가 연구실에서 기보라도 놓을라치면 동료들이 “수년 내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놀릴 정도라는 것. “제가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동료들에게 ‘노는 것도 다 공부다’라고 변명처럼 얘기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틈틈이 기보 보고 어울려서 연습 대국도 두는 등 여유 있게 공부해야 능률이 나는 거 같아요.”
한국 바둑이 중국 바둑에 밀린다는 우려가 많다고 했더니 조 9단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층이 얇은 건 맞지만 실력은 큰 차이가 없어요. 3,4년 전에 비해 국내 신예기사들 실력이 많이 올라왔어요. 신진서 신민준 이동훈 민상연 또래들이 조금만 더 있으면 지금 중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커제 9단과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대학(한국외대)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할 거라고 한다. 여자친구가 뒤늦게 공부하는 것을 기다려주느라고 늦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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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한번 씩 웃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