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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2월 1일
2012년 이후 4년 연속 한국영화 누적 관객이 1억명을 넘어섰다. 11월30일 영화진흥위원에 따르면 올해 한국영화는 이날까지 1억62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1000만 영화’가 1년에 두 편씩 나오는 상황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등 외화의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렸다. 그 핵심은 ‘직배(직접 배급)영화’였다.
1990년 오늘,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사진)’이 서울 종로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에서 개봉했다.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혜영 박상민 등 배우들과 임권택 이장호 정지영 감독 등 300여명의 관계자들이 규탄 시위를 열었고, 상영 중단 요구도 이어졌다.
‘사랑과 영혼’은 미국 유니버설·파라마운트·MGM 등 영화를 전 세계에 배급하는 UIP가 직접 배급했다. 앞서 1985년 외국 영화업체의 국내 직접투자를 허용한 한미 영화협상과 영화법 개정에 따라 1988년 UIP가 한국에 진출했고 ‘위험한 정사’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를 선보였다. 물론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극장에 뱀을 풀어놓는 등 격렬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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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울극장연합회 회장이었던 곽정환 대표의 서울시네마타운 측은 “서울시극장연합회와 전국극장협회가 11월 미국 직배영화를 상영키로 했다”고 주장했다. 곽 대표는 1988년 직배영화의 국내 첫 상륙 당시 한국영화계의 반발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결국 직배영화에 문을 열었다.
그 이면에는 이날 서울 종로의 단성사에서 ‘다이하드2’가 개봉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다이하드2’는 곽 대표와 함께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던 이태원 대표의 태흥영화사 수입작이었다. 곽 대표는 ‘다이하드2’가 직배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고, 태흥영화사 측은 미국 영화사 20세기폭스와 수입을 나눠 갖는 것일 뿐이라고 맞섰다. 이에 젊은 감독들의 ‘오늘의 영화감독 모임’과 기획자들의 ‘영화사 기획실 모임’은 서울시네마타운의 직배영화 상영 중지와 ‘다이하드2’의 개봉 연기 등을 촉구했다.
한국영화의 1억 관객 시대는 어쩌면 이 같은 갈등 속에서도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려 했던 이들의 노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