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러브콜’을 받는 것도 이런 정치 지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야 모두 외교 전문가인 반기문 카드를 두고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반기문의 고향인 충청권 표심을 굳히는 ‘지역연대’ 전략도 강점이다. 반기문의 손만 잡으면 ‘충청권+알파(α)’ 효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기문 카드는 잡기만 하면 무엇이나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미다스의 손’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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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외교부 출신 전현직 인사들이 사석에서 반기문 대망론을 화제로 삼은 적이 있었다. “외교부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넘쳤지만 여의도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결국 외치와 내치를 분리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외치 대통령’을 맡는 게 최적의 대안으로 제시됐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도 여권 주류 친박 세력들이 꺼내든 ‘반기문 대통령-친박 국무총리’ 버전과 닮은꼴이다. 친박의 힘을 업어야 한다는 현실론이 작용했을 것이다.
개헌은 역대 정권의 단골 메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도 분권형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모두 좌초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개헌안에 대해 당시 야당의 ‘빅2’였던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받아쳤다. 이명박 정부의 개헌 드라이브에 친박은 ‘박근혜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여야 차기 주자들의 묵시적 동의가 없다면 개헌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 카드로 차기 대통령을 무력화한다는 식으로 비치면 국민은 개헌을 정략으로 받아들인다. 2017년 대선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7년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만든 ‘87년 체제’가 30년째를 맞는 해다. 자연스럽게 권력구조의 재편 문제를 공론화해 볼 만한 때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개헌 담론은 권력게임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졌다. 친박은 자신들의 대선후보를 만들어 내지 못한 틈새에 ‘반기문 대망론’을 띄웠다. 1년 전 김무성이 분권형 개헌을 거론했을 때 반발한 친박이 이번에 판박이 같은 개헌론을 꺼낸 배경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친박의 개헌 방정식에 국민이란 변수가 빠졌다. 개헌이 정략적으로 비치면 동력을 상실한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