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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11월 4일
남자를 납치한 영화 ‘나는 소망한다…’
최근 인터넷상 일부 사이트에서 극단적으로 여성을 비난·비하하는 ‘여성 혐오’의 기운이 논란을 모았다. 여성들은 이에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며 ‘여혐혐’의 ‘미러링’(거울에 모습을 비추듯 상대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해 앙갚음한다는 의미)으로 맞서며 역시 논란에 휩싸였다. 상대의 성(gender)에 대해 극도의 비난을 서슴지 않는, 증오에 가까운 모습은, 그 온전함 여부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는 별도로, 씁쓸하기만 하다. 그만큼 사회의 성차별은 극대화한 것일까.
1993년 오늘,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촬영을 시작했다. 장길수 감독 연출로 최진실과 임성민, 유오성이 주연한 영화는 양귀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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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영화는 또 다른 화제로서 힘을 발휘했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남자배우를 납치, ‘사육’하는 과정을 그리며 남성중심의 사회에 강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남자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의 부당함을 깨닫지만 ‘납치와 사육’을 통해 그 계기(?)를 제공한 여자는 오히려 자신의 추종자인 또 다른 남성에게 똑같은 폭력과 억압을 행사한다. 이 같은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성차별과 성적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영화는 당시 사회적·문화적인 주요 현상으로 떠오른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의 시각 안에서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미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연극 ‘자기만의 방’ 등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문화예술계 안에서도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그 인식 안에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앞선 ‘그대 안의 블루’와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개 같은 날의 오후’ 등을 잇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 즈음 국내 첫 여성영화제가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열리기도 했다.
남성과 여성 혹은 여성과 남성은 대립하는 것일까에 관한 물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극단적 혐오에 빠진 이들에게 권해본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