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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상상 그 이상

입력 | 2015-10-29 03:00:00


“말도 안 돼.”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화면에서는 남북 이산가족의 애절한 상봉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60년을 훌쩍 넘긴 기나긴 기다림, 그토록 긴 기다림에 비해 너무나 짧은 만남. 그들 중 누군들 60여 년 전 잠깐의 헤어짐이 이렇게 먼 이별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도 그 기막힌 세월을 용케 살아내고 죽기 전에 잠시 얼굴이라도 보았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설사 허구의 드라마라고 해도 너무 가혹한 설정이련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니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실감할 따름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대하드라마가 펼쳐지던 지난주에 나는 남편이 보여주는 소소한 삶의 드라마를 목격했다.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사진가로 활동하면서도 고향에선 한 번도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던 남편이 지난주에 처음으로 고향에서 전시를 여는 날, 생각지도 못한 분이 찾아온 것이다.

1969년 당시 최봉채 전북 고창군수는 상금을 걸고 연대 미상이던 고창읍성의 축성연대 찾기를 실시했다. 그때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앞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스무 살 청년이었다. 축성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뭔가 도전해 보고 싶었던 그는 성을 수십 바퀴 돌고 또 돌며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이 성벽의 돌에 새겨진 지명(地名)과 조선시대의 고서를 확인해 가면서 마침내 1453년이란 연대를 밝혀냈다. 그리고 그때 받은 상금으로 상경하여 사진을 공부함으로써 사진가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46년 전에 그에게 상장을 수여한 군수는 이제 96세의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자신이 한 청년의 인생을 바꾸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전시장 벽에는 작가 약력과 함께 1969년의 시상식 사진이 붙어 있었다. 상장을 주는 중년의 군수와 그것을 받는 청년. 그때 두 사람은 46년 후 이런 만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삶은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아주 절망하지는 말 것. 어디선가 구원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음을 믿을 것. “바람은 딴 데서 불어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김수영 시인의 ‘절망’의 한 구절은 마치 예언서 같다. 그래서 나는 굳게 믿고 싶다. 좌절과 절망은 때로 희망이란 바람의 시원(始原)이 될 수 있다고.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