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호/정치] 문재인은 김무성 엄호…文武同舟에 헷갈리는 네 편, 내 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월 2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 회동한 뒤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들의 오월동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대표 이야기다. 추석 연휴가 한창이던 9월 28일 김무성과 문재인, 두 대표는 부산에서 만났다. 그것도 단둘이. 양당 대표는 추석 밥상에 왜 그리 급하게 ‘국민공천제’라는 반찬을 올려놨어야 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둘 다 ‘아프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김 대표는 친박근혜(친박) 세력 혹은 청와대에 의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9월 10일 ‘마약 사위’ 기사가 터져 나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을 떠올린 사람이 필자뿐일까. 이것은 전적으로 무리한 억측이라고 하자. 이어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9월 15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불가와 함께 이른바 ‘김무성 대권 불가론’까지 역설했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도 이틀 뒤 물 건너간 오픈프라이머리의 대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국감 전후로’ 내놓으라며 시기까지 못 박았다. 비박(비박근혜)인지 친박인지 헷갈렸던 원유철 원내대표의 커밍아웃(?)도 이어졌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회의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온 것. 김 대표로선 심한 멀미가 나는 게 당연한 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사무치게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김 대표, 당 대표직을 유지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여전히 헷갈린 상황에 놓인 문 대표.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고, 정치에서 오월동주는 흔한 일. 이들의 만남은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아픈 사람끼리 만나 안심번호를 도입한 국민공천제에 ‘잠정 합의’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지역구 증감 문제, 선거 연령 등 어려운 숙제는 다음으로 미뤘다.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유통기한이다. 일명 ‘영도다리 대전’이 성사되면 두 사람은 내년 총선에서 맞붙어 싸워야 할 상대다. 더욱이 두 사람은 잠재적 대권주자로 여론조사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자 당내 문제를 돌파하려면 당장은 서로의 그늘이 필요하다. 관심은 언제까지 두 사람이 한배를 탈 것인가다.
김무성 대표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뭘까. 김 대표는 새정연의 혁신안 통과로 ‘야당과 동시에 치르는’ 오픈프라이머리가 물 건너가자 ‘취지’는 반드시 살리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래서 짜낸 대안이 안심번호를 도입한 국민공천제다. 그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렸다는 명분과 야당 대표와 합의까지 했다는 명분을 동시에 쥐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오픈프라이머리에 목을 매는 걸까. 핵심은 공천권이다. 더 노골적으로는 청와대 입김 차단용이라 믿는 듯하다. 그에겐 과거 공천 학살의 피해자라는 트라우마도 있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서 최대한 우군을 많이 확보해야 대통령선거(대선)까지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친박계의 압박과 함께 ‘청와대발(發) 물갈이론’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어느 한쪽이 죽어야 다른 한쪽이 사는 형국이다. 9월 30일 열린 ‘고성과 손가락질’ 의원총회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질문은 이어진다. 과연… 될까.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양측 모두 사활을 건 싸움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후반기 국정운영의 동력 확보는 물론, 퇴임 이후까지 생각한 다목적 포석이 내년 총선 공천권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김 대표는 최근 ‘전략공천’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친박계를 향해 “내가 있는 한 전략공천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정치는 (너무 자주)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그간 한 발 전진, 두 발 후퇴했던 김 대표의 과거 전력도 다시 한 번 의심해봐야 한다. 결국 일부 지역의 전략공천을 통해 서로 적당히 ‘성의’를 보이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게다가 김 대표가 문 대표와 담판(혹은 담합)을 통해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일까지 성사시킨다면 서로 윈윈(win-win)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또 어떤가. 그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뭘까. 일단 혁신안 통과라는 고비는 넘겼다. ‘어쨌든’ 재신임 고비도 넘겼다. 다소 불안하지만 지금처럼 친노 중심으로 똘똘 뭉쳐 총선까지 간다면 이후 대선까지 다소 무난히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줄줄이 망친 친노들만의 선거가 될지언정. 비주류가 가만있을 리 없다. 이들의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친노의 잔치’였던 공천 과정을 분노하며 지켜봤던 이들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문 대표가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 않는다. 동시에 호남발 신당론도 계속되고 있다. ‘천정배 신당’에 이어 박주선 의원의 이른바 선도탈당도 신경 쓰인다. ‘문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한 안철수-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추석 직후 회동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친박-비박이든 친노-비노(비노무현)든 화려한 명분 뒤에 목적은 하나로 수렴된다. 밥그릇 싸움이고 또 지분 싸움이다. 새정연은 당장 두 가지 고비가 있다. 이미 확정한 20% 전략공천을 누구 몫으로 하느냐다. 비노 처지에서는 친노의 본심(?)을 시험 혹은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전에 또 하나가 있다. 현직 의원들을 물갈이할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 인선 문제도 벌써부터 시끄럽다. 문 대표는 이 모든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문제가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라도 풀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선거 연령 하향 등 원하는 내용을 김 대표와 담판을 통해 받아내야 한다.
김 대표와 문 대표. 누구의 고통이 더 오래갈지는 결국 총선에 달렸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중요하다. 정치에서 선(善)은 선거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양(총선 승리)은 물론 질(계파 승리)까지 챙겨야 하는 총선을 앞둔 김무성과 문재인, 양당 대표의 잠 못 드는 밤은 당분간 계속될 모양이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 mcleesh@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07.~10.13|1007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