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그것은 1945년 9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고백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편지에 따르면 글쓴이는 당시 서울 양정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던 그는 당시 안동에서 트럭을 얻어 타고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날이 저물자 트럭 운전사와 함께 진보면의 한 여관에 머물게 됐다. 여주인이 해준 저녁까지 맛있게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은 밤새 잠을 설쳤다. 여관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날 새벽 그는 주인의 눈을 피해 영양으로 달아났다.
여관비를 내지 않고 도망쳤다는 마음의 짐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뒤늦게 돈을 내기 위해 당시 여관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 마을을 수소문했지만 주인을 찾기도 어려웠다. 결국 궁리 끝에 그는 진보면사무소로 현금 50만 원과 편지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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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면 측은 글쓴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수소문 결과 편지의 주인공은 조동걸 국민대 국사학과 명예교수(83)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 교수는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한국사학사학회 회장, 백범기념사업회 고문, 한일역사공동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지내는 등 국내 근현대사학계의 거목이다. 현재는 한 의료기관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명예교수는 편지에서 “돈은 진보면 숙박업소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진보면은 ‘양심거울’을 제작해 지역에 있는 여관 6곳에 기증하기로 했다. 권영상 면장은 “7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반성하는 노교수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양심거울을 만들었다”며 “누구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