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사업 관심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농어촌 지역에 보급하고 있는 ‘농약 안전보관함’.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올해 3월경 할머니가 외출한 사이 할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죽겠다’고 결심했다. 장롱 서랍에서 농약 보관함의 열쇠를 찾고, 창고에 있는 ‘농약 안전보관함’으로 가서 열쇠를 끼우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열쇠를 떨어뜨리고 농약 보관함 앞에 앉아서 멍하니 있다 외출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왜 갑자기 농약을 꺼내려는 거냐”라고 소리를 지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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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건강통계 2015’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2012년 기준 10만 명당 81.9명으로 세계 1위다. 이런 상황에서 농약 보관함이 농어촌 노인들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자살 방법인 ‘농약 마시기’를 예방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약 보관함이 보급된 106개 마을(총 4350개 보급)에서는 보관함이 전달된 뒤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내면에는 두려움과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다”며 “‘열쇠 찾기(1단계)’, ‘보관함 문 열기(2단계)’, ‘농약병 열기(3단계)’같이 목숨을 끊는 행동을 지연시키는 조치를 여럿 마련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아가 자살을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다리와 건물 옥상 등에 설치하는 ‘자살예방 상담 전화’와 ‘자살 방지용 조형물’ 같은 것도 자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시간을 끌면서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것을 겨냥한 조치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농약 보관함처럼 자살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막는 조치를 지역사회와 연계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