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69>체면치레 장례 부추기는 말
아버지 병문안차 병원에 들른 장 씨의 고모부는 장 씨를 조용히 불러 수의와 관은 좋은 걸로 준비했는지 물었다. 회사를 통해 가입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장 씨는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면 모를까, 장 씨가 나서서 상의를 드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모부는 “괜히 싸구려 수의 입혀서 보내면 저승 가는 길 춥다”며 압박을 줬다. 장 씨는 “아버지가 값비싼 수의와 관을 원하실지, 오히려 쓸데없는 데 돈 쓴다고 역정을 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께 여쭤볼 수가 없고 친척 어른들 눈치도 보여서 결국 그냥 비싼 걸로 했다”고 말했다. 장 씨 아버지의 장례는 매장이 아닌 화장이었지만 별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장 씨처럼 부모의 임종을 앞두고 또는 임종 후 장례 절차에 돌입했을 때 지인들, 특히 나이 많은 친척들로부터 “고인 섭섭하지 않게 잘 보내 드려라”라는 말을 들어봤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섭섭하지 않게’는 곧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와 같은 말이다. 고급 용품을 사용하고, 화려한 장식을 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관습적으로 내뱉는 그런 말들은 결국 장례에서의 관습적인 허례허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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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례식 때 쓰는 용품은 이왕이면 비싼 게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게 예의라고 예전부터 들어왔다’는 응답이 많았다. 우리도 모르는 새 허례허식이 머릿속에 박힌 것이다. 물론 ‘효도는 살아생전에 해야 하고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쭉 유지하며 남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