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2008년 금융위기때와 닮은 꼴… 9월 위기설 재등장
2008년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세계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면 이번엔 ‘중국발(發) 금융 쇼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때에 비해 한국의 경상수지나 외환건전성이 눈에 띄게 좋아지긴 했지만 1100조 원을 넘는 가계부채가 위기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한 상태다.
○ 한국 등 신흥시장 연일 급락, 외국인은 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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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장을 흔드는 주역은 외국인이다. 이달 5일부터 24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2조60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내다팔았다. 2008년에도 외국인은 33거래일 연속(6월 9일∼7월 23일) 9조 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최장 기간 ‘셀 코리아’ 기록을 세웠다. 비록 지금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으로 위기에 대비한 방파제를 든든히 쌓아놨지만 외국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인 것처럼 한국에서 돈을 빼내 선진국의 안전 투자처로 옮기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충격이 더 커 통화가치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등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는 것도 7년 전과 같은 모습이다. 당시엔 원자재 투기로 인한 버블(거품)이 무너진 게 폭락의 주된 이유였다면 지금의 유가 하락은 중국 등 세계 경제의 부진으로 자원 수요가 급감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크다. 이 때문에 러시아,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 정부는 “위기설 근거 없다” 진땀
해외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위기설이 등장하고 정부가 이를 진화하는 데 진땀을 흘리는 양상 역시 7년의 시차를 두고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는 한국을 위안화 변동에 가장 취약한 국가 10개국(‘Troubled 10’) 중 하나로 지목했다. 또 미국이 금리인상을 예고한 9월에 세계경제에 핵폭풍이 불어 닥친다는 내용의 ‘9월 위기설’ 역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채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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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런 긴박한 대응은 2008년 금융위기 때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당시에도 외국인의 채권 만기가 일시에 집중된다는 ‘9월 위기설’이 있었고 외신들은 “한국이 ‘검은 9월’로 가고 있다”(영국 더 타임스) 등 자극적인 기사로 시장 불안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 금융사들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외국의 투자은행 본사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그렇게 많다는 정부 발표를 믿어도 되느냐’며 한국 지점에 문의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가계부채가 ‘위기의 불쏘시개’ 될 수도
전문가들은 “시장이 해외 변수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측면은 있지만 이를 가볍게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달러를 구하지 못해 ‘외화난’에 시달려야 했던 2008년과 달리 지금 한국은 당장 외환위기를 걱정할 정도로 금융시장 상황이 급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발 쇼크가 수출 및 실물경기를 억누르는 와중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 빚이 많은 가계 부문에서 더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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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돼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모든 금융위기는 누군가가 빚을 못 갚는 ‘신용 리스크’가 있어야 생기는데, 지금은 그 정도의 위기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