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피부’ 어디까지 개발됐나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개발한 소름 감지용 전자피부. 사람이 공포나 감동을 느낄 때 피부에 돋는 소름을 센서가 감지하게 만들어 인간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KAIST 제공
혈당 체크나 심장박동수, 맥박 측정 등 주로 의료용으로 개발되던 전자피부가 최근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자피부는 사람의 피부처럼 얇고 부드러우면서 잘 늘어나 몸에 붙일 수 있는 초정밀 센서다.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최근 개발한 스트레스 측정용 전자피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KAIST 제공
조영호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팀은 최근 스트레스를 감지하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전자피부는 우표 한 장 크기다. 피부 전도도, 온도, 맥박 등 신체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들이 한데 붙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이 분비되면서 체온이 올라가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조 교수는 “전자피부가 실시간으로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며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휴식 경보를 보내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팀은 공포심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을 때 피부에 돋는 소름을 측정하는 전자피부도 개발했다. 소름이 나면 피부의 입모근(立毛筋)이 움직여 털이 선다. 지름 2mm, 높이 0.2mm인 원뿔형 입모근이 센서에 닿으면 전자피부는 소름이 돋았다고 판단한다. 대개 1cm²당 입모근이 10개 이상 포착되면 소름이 돋은 것으로 본다. 전자피부는 소름의 발생 속도와 크기도 측정한다.
소름 센서는 문화 산업에 활용할 수 있다. 공연을 끝낸 무대 위 가수에게 박수나 환호성을 보내는 대신 소름이 얼마나 돋았는지 측정해 감동의 크기를 잴 수 있다. 영화 선호도를 ‘소름 별점’으로 매길 수도 있다. 조 교수는 “전자피부 개발 초기에는 온도, 습도 등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 기능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체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전자피부가 사람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비가 앉을 때 생기는 극히 작은 압력까지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 전기 전도도 변화를 감지해 나비가 움직이는 방향도 잡아낸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전자피부는 첨단 로봇에도 사용된다. 기계가 느낀 감각을 전자피부를 통해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거나 반대로 사람의 움직임을 기계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만든다.
데니스 마카로프 독일 켐니츠공대 연구원은 두께가 2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에 불과한 초박막 전자피부가 지구 자기장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1월 21일 자에 발표했다. 이 전자피부를 장갑에 붙이면 손바닥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전자피부 전문가인 김도환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는 “고양이가 수염으로 기압 차를 감지해 장애물을 피해 가는 것처럼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슈퍼 전자피부’ 개발이 한창”이라며 “슈퍼 전자피부를 부착한 로봇은 화재 등 재난 현장에서도 크게 활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