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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父 이맹희 마지막 길…참았던 눈물 터뜨리며 오열

입력 | 2015-08-20 17:21:00


19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일가가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기 위해 타고 온 차량. 김성모기자 mo@donga.com

아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서울대병원 장례식장)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입원해 있는 암병원 건물과 겨우 200m 거리였다. 하지만 고작 두 번, 그것도 10분씩밖에 머물지 못했다.

19일 오후 11시 30분경 구속집행정지 이후 1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살이 빠져 앙상한 체구에 머리는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희끗희끗했다. 장례식장 지하 1층 입관실 앞까지 차를 타고 온 이 회장은 직원들이 준비한 휠체어로 옮겨 앉기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의사 한 명이 옆에서 수행했다. 그는 무릎 담요를 덮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을 맞이했다. 이 회장은 가족 및 스님들과 함께 입관 의식을 치렀다. 이 회장은 10여 분 동안 입관실 내 시신안치실에 있던 아버지의 관을 수차례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다.

● 통제 속의 만남

기자의 취재 전까지 CJ 측은 이 회장의 장례식장 방문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CJ에 따르면 이 회장은 아버지의 시신이 중국에서 운구 된 17일 오후 8시 5분경에도 시신 안치실을 찾아 관이 닫히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하지만 20일 본보의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CJ 측은 “이 회장은 장례식장에 오기 어려울 것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19일 자정에도 “이 회장의 빈소 방문은 없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기사가 게재된 20일에는 CJ내부에서 “누가 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장례식장 지하에는 입관실로 향하는 문이 있다. 문을 열면 조리실과 사무실 그리고 1호실 내부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일부 VIP들은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기도 했다. 이 회장이 이동한 19일 늦은 밤 기자들은 주로 장례식장 1호실이 있는 3층 현관에 몰려 있었다. 비슷한 시각에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빈소를 빠져나가자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 때문에 CJ 직원들이 분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암병원에 있던 이 회장이 장례식장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CJ 임원들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가늠케 하는 정황이었다. 기자는 운 좋게 이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입관실 인근으로 이동해 취재를 진행했다.

● 깍듯한 아들

할아버지(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와 사이가 멀어진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신을 남겨둔 채 해외를 떠돌았지만 이 회장은 그런 아버지에게도 항상 깍듯한 아들이었다. 이 명예회장이 오랜만에 서울로 돌아오면 이 회장 내외는 장소가 어디든 큰 절로 아버지를 맞았다.(이 명예회장의 저서 ‘묻어둔 이야기’ 참고) 하지만 이 회장이 2013년 탈세 배임 혐의로 구속 수감되고, 이후 지병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감에 따라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이 명예회장의 시신은 20일 장지인 경기 여주시 연하산에 안장됐다. 발인을 마친 운구 차량은 오전 8시 영결식 장소인 서울 중구 필동로 CJ인재개발원으로 향했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추도사에서 “(이 명예회장은) 가족의 안녕을 위해 고독한 삶을 자처하신 분”이라며 “이제는 힘들었던 삶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차남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직계가족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범 삼성가 친인척이 모였다. CJ인재개발원은 이 명예회장이 생전에 살던 집터에 위치해있다. 타국을 떠돌던 삼성가의 장자는 30여 년이 지나 주검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성모 기자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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