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섣부른 우천취소 결정으로 인해 KBO리그가 잔여경기 일정 고민에 빠졌다. 시즌 막판 불가피하게 월요일 경기를 치르면서 선발로테이션이 꼬이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넥센 선수단이 16일 목동 롯데전이 1회말 우천 노게임으로 선언된 뒤 관중에게 인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다. 목동|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이승엽(삼성)이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맹활약하던 2007년의 일이다. 당시 요미우리는 도쿄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와 원정 3연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오전부터 폭우가 시작되더니 오후에는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비가 쏟아졌다.
기자는 오후 6시 예정된 이날 경기는 진행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오후 3시쯤 홈구단인 야쿠르트의 홍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경기는 취소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한국프로야구라면 일찌감치 취소되고도 남을 정도로 비가 내렸고, 비가 그친다고 해도 그라운드 사정 등을 고려하면 경기가 열리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야쿠르트 홍보 관계자는 “오후 6시쯤에는 비가 그친다고 하니 우리는 경기를 치르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오후 6시30분쯤에는 야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장에 오는 편이 좋겠다”고 귀띔했다.
한국프로야구는 올 시즌부터 팀당 144경기 체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우천취소경기가 발생해 일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월요일 경기를 치르고 있는 형편이다. 11월에 ‘프리미어 12’까지 예정돼 있어 앞으로 우천취소경기가 늘어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과연 하늘만을 원망해야 할까. 시즌 초반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일찌감치 경기를 취소한 것이 결국 지금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우천취소 후 하늘이 개면서 허무하게 날린 일정도 꽤 된다. 결국 자업자득이다.
비가 오는 날은 평소보다 관중수가 줄겠지만, 이제 우리도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처럼 웬만해선 경기를 시작한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 툭하면 경기를 취소하니 오히려 하늘이 조금만 흐리면 경기가 취소될 것으로 지레짐작한 팬들이 야구장을 찾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팀당 120∼130경기를 소화하던 시절이면 모르지만 선수단도, 구단도, KBO도 마인드를 144경기 체제에 맞춰 바꿔야 한다. 13일 목동 한화-넥센전 때 무려 50분을 기다려 그라운드를 정비하고 경기를 시작한 노력의 절반만 기울여도 우천취소경기는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 경기 개시 3시간 전 우천취소할 수 있는 규정도 손볼 필요가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