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당시 이 라면 포장지에는 ‘의좋은 형제’라는 한국 민담 그림도 있었다. 형제가 서로의 살림을 염려해 밤중에 볏가리를 옮기는 장면이다.
훈훈한 ‘형제애(愛) 마케팅’인가 했는데 돌이켜보니 고도의 숨은 뜻도 있었던 것 같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1960년대 라면사업을 결심했다. 그런데 형은 도와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 500만 원을 융통해 1965년 라면회사인 롯데공업을 세웠다. 1975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를 내세운 농심 라면이 성공하자 3년 후엔 아예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형, 롯데와의 관계도 영영 끊었다. “그럼 제가 먼저”라던 아우의 마지막 말은 형(신격호)에 대한 동생(신춘호)의 원망과 경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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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한국 기업인가, 일본 기업인가. 나는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가 일본인에 대해 쓴 ‘국화와 칼’(1946년)을 다시 읽었다. 롯데를 보면서 자꾸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을 상상할 수 없다. 천황은 불가침이며 신성하다.’
‘장성한 아들이라도 아버지가 생존해 있으면 일일이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은 친족회의를 소집해 그 문제를 토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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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신격호는 ‘경영의 신’이었지만 인간 신격호는 ‘가족 경영의 신’은 되지 못했다. 그는 ‘세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첫 번째 부인)’을 치렀다. 형제들과는 척을 졌고, 말년에 자식들 간 분쟁을 맞고 있다.
정부도, 국회도 이 기회에 법과 제도를 잘 손봐야 한다. 그래야 승계를 앞둔 많은 기업의 ‘왕자의 난’을 대비할 수 있다. 롯데도 상처에 ‘빨간 약’ 바르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어제 주가는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21만 원대가 무너졌다.
끝까지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의 소비산업을 업그레이드해온 ‘신격호 경영사(史)’의 후반부가 얼룩졌다. 그는 경영의 진수인 ‘결단’을 진작 못 했고, ‘내 회사’라는 정열에 지배당했다. 롯데가 이번에 국민에게 준 실망과 분노를 ‘휠체어에 탄 신격호’는 알고 있을까. 혹여 잘 모를까 봐 슬프다.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식들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가장 보고 싶어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