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564쪽·3만 원·역사비평사 “마루야마 마사오가 왜곡 주도” 파격 주장
일본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현재 일본 최고액인 1만 엔권에 초상화가 실릴 정도로 일본에서 그의 학문적 권위는 상당하다. 역사비평사 제공
1882년 6월 흥선대원군을 등에 업은 구식 군대가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일본의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는 조선 정벌을 강하게 주장했다. 2년 뒤 개화파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후쿠자와는 직접 무기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그는 “조선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중국) 병사를 몰살하고 곧바로 베이징을 함락시켜야 한다. 천황 폐하의 친정을 기필코 단행해야 한다”고 외쳤다.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1만 엔권에 등장하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아베 신조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 등 일본 극우세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숨을 거둔 지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를 둘러싼 평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후쿠자와 서거 100주기였던 2001년 아사히신문과 일본경제신문 등 일본 유수의 언론이 그를 대대적으로 조명했다.
일본 학계에서 덴노(천황)로 불린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전 모습.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일본 ‘시민 자유주의’의 효시로 높게 평가했다.
마치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를 보는 것처럼 찬양일색이다. 저자는 시사신보의 당시 사설 대부분이 후쿠자와의 손을 거쳤다며 “후쿠자와가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교육칙어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마루야마 등 다수 학자의 주장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후쿠자와의 명언을 천부인권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해석한 마루야마의 이론도 정면으로 공박한다.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 문장이 ‘∼라고 한다’ 식의 전언체로 돼 있는데 이는 후쿠야마 자신의 주장이라기보다 서구의 천부인권 사상을 단순히 인용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쿠자와는 저서 ‘학문의 권장’에서 “일본 국민의 유순함은 집에서 기르는 비쩍 마른 개와 같다” “인민은 여전히 무기력한 우민(愚民)일 뿐”이라며 일반 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책은 후쿠자와를 시종일관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그를 위한 단 하나의 변명을 남겼다.
“필자는 후쿠자와의 한계를 그의 사상적 책임으로만 치부할 생각은 없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없었던 일본 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을 읽어내지 않는다면 (후쿠자와에 대한 비판은) 공평성을 결여한 논의가 될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