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북한 프로젝트’展
비무장지대(DMZ)를 3차원 가상현실로 제시한 권하윤의 ‘489년’ 스틸 이미지. 헤드셋을 착용하고 체험하는 DMZ는 작가가 지난해 경기 파주에 머물며 만난 수색대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한 ‘주관적 기억의 공간’이다. 한반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데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을 제목으로 썼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개막을 앞두고 한 기획담당 직원은 “거부감 느끼는 관객이 많을까 봐 걱정”이라 토로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2년 평양 아리랑축전을 촬영해 7.55m 너비로 인화한 왕궈펑(중국)의 작품을 본 남성 관객이 “적화통일 됐어? 이거 웬 북한 사진이야?” 역정을 냈다. 닉 댄지거(영국)의 북한 주민 생활상 연작을 본 10대 여학생들은 “야, 북한에도 미용실이 있나 봐” 깔깔대며 지나갔다. 2010년 5·24 대북조치 이후 민간 교류가 중단되면서 북한은 지구 반대편보다 먼 거리감을 주는 시공간이 됐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되고, 단조로워도 안 돼요. 역사 얘기를 하고 싶어요. 조선 정악 같은 느낌? 흐르지 않고 침체된 가운데 전조(轉調)가 시작되죠.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안에서 치고받는 상황. 이젠 남한과 북한을 독립된 두 나라로 보는 시각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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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탈북화가 선무의 ‘우리 식대로’, 빔 판 데르 베일(네덜란드)의 북한 포스터 컬렉션(부분·1980년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0분 8초 길이의 ‘먼저 온 미래’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이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곡을 들려주고 보여준다. 전 작가는 “김 씨가 이야기하는 북한과 내가 상상한 북한의 온도 차가 컸다. 이념적 대립을 예술적 상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뼈대는 평안도 민요 ‘용강기나리’와 남한 동요 ‘엄마야 누나야’. 두 노래에서 찾은 공통 음계의 선율을 재료로 곡 제목처럼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완결된다. 울림이 만만찮다.
전시실 초입에는 강익중의 ‘금수강산’이 쨍쨍 소리를 낸다. 뱅뱅 도는 물줄기 위에 띄운 자그마한 달항아리 70개가 맞부딪는 소리다. 작가는 “달항아리는 위 아래로 나눠 빚지만 불을 뚫고 나오면 하나로 합쳐진다”고 했다.
1998년 탈북한 화가 선무(가명)는 전시실 바닥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조국통일의 척후병’ 같은 글씨를 음각한 나무판을 깔아놓았다. 밟고 지나가도 된다. 이데올로기 구호를 밟고 넘어가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포대에 곱게 싸여 잠든 갓난아기의 얼굴 위로 칼을 빼든 채 축전 행사 연습에 여념 없는 여군의 얼굴이 겹쳐진다. 야릇한 혼돈을 가식 없이 직시한 여운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