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가운데)는 12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K리그 클래식 22라운드 원정경기를 끝으로 2년 6개월간의 한국생활을 마무리했다. 일본 J리그 시미즈 S펄스로 이적한 그는 이제 다시 ‘자이니치’로 돌아간다.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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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리그로 떠나는 정대세
“북한대표팀서 뛰었던 내가 K리그서도 뛰었다”
부산전 끝으로 2년6개월간의 한국생활 마무리
K리그서 23골…점차 이타적인 선수로 거듭나
“수원서 스트라이커가 아닌 축구선수로서 눈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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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인 정대세
독일 FC쾰른을 거쳐 2013년 1월 정대세가 수원에 입단했을 때, 그의 한국행은 세계적 뉴스가 됐다. 그가 걸어온 길이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였다. 정대세는 1984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조선적(籍)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지만,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친북 성향인 조총련 계열의 학교에 다녔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생활하면서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남한 국적의 ‘경계인’이었다.
일본에 매번 무릎을 꿇는 북한축구를 보면서 언젠가부터 북한대표팀에서 뛰길 염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A대표팀 선수의 자격으로 ‘국적’이 아닌 ‘해당 국가의 여권 소유 여부’를 채택하고 있다. 조선적 어머니 때문에 북한 여권을 가질 수 있었던 그는 결국 2010남아공월드컵 때 인공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다. 브라질전에 앞서 북한 국가가 울려 펴질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남아공월드컵 10대 순간’에 뽑히기도 했다.
● 평화의 상징이고 싶었던 정대세
정대세는 안영학(2006∼2009년·부산∼수원)에 이어 북한대표팀 출신으로 K리그를 누빈 2번째 선수다. 첫해 23경기에서 10골을 넣었던 그는 지난해 28경기에서 7골, 올해 22라운드까지 6골을 터트리며 2년 반 동안 K리그에서 총 23골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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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내가 K리그에서도 뛰었다. 한국에서 평화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정대세는 “수원에서 뛰면서 스트라이커가 아닌 축구선수로서 축구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한국생활을 통해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성장했다고 밝혔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