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나는 올여름의 더위를 책 읽기로 이겨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책방을 정리하면서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아둔 책들을 서가에 가지런하게 꽂는다. 그리고 이 여름에 다시 한번 읽을 책들을 골라 책상 위에 쌓아 놓는다. 새로 고쳐 펴낸 대하 장편소설 ‘변경’ 열두 권이 맨 앞자리에 놓인다. 어떻게 고쳤는지 다시 꼭 읽겠다고 작가에게 한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무산 스님의 ‘벽암록 해제’도 다시 꺼내놓았고, 읽다가 덮어둔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도 이번 여름에는 꼭 끝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새로 산 신작 소설 두어 권까지 올려놓고는 내 여름나기 독서 계획에 스스로 만족한다. 집 안에 앉아 넉넉한 반바지를 입고 부채를 들고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편할 것인가? ‘서중독서(暑中讀書)’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책과 더불어 한여름 더위를 이겨보겠다는 내 생각이 딱하다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책방 정리한다더니 왜 책들을 책상 위에 다시 쌓아 놓았느냐며 아내가 핀잔한다. 여름 동안 다시 읽어 보려는 것들이라고 대답하니, 이 책들 이미 다 읽은 게 아니냐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읽긴 읽었지만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책이란 백 번쯤 두루 읽어야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책 한 권을 백 번이나 읽어야 한다는 것은 좀 과장된 말이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책을 두세 번 정도 읽는 것은 누가 말릴 일이 아니다. 이 중국의 고사에 덧붙여진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말이 있다. 책을 언제 읽는 것이 좋으냐는 물음에 대해 세 가지의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는 ‘첫째 겨울, 둘째 밤, 셋째는 비 올 때’를 여유로운 시간이란다. 농경생활을 하던 옛날을 생각한다면 겨울이 가장 한가로운 때일 것이고, 일을 하지 않는 밤이 여유로울 것 같다. 비가 오면 들에서 일하기 어려우니 시간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나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해 책을 읽으라는 옛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책이란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내어 읽어야만 하는 것이지 여유 있을 때를 찾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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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작은 출판사 대표의 푸념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은 만날 먹고 놀러 다니는 이야기만 떠들지요. 젊은이들은 모두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누가 책을 사서 읽어야 말이지요.’ 나는 책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비관론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어느 때인들 책이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는가?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