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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7월 10일
약 2년여 전, 연기자 박용식은 서울 시내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앞서 5월 캄보디아에서 한 종교영화를 촬영하고 온 뒤였다. 유비저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은 결국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8월2일은 그의 2주기가 되는 날이다. 1980년대 그가 또 다른 고통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낸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닮은 외모 때문이었다.
1991년 오늘,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2TV ‘TV손자병법’을 녹화하고 있던 박용식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비서관은 박용식과 전 대통령의 만남을 제안했다. 박용식은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이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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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식은 1979년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얼굴이 닮았다는 지적 속에 TV에서 사라졌다. 엄혹한 현실의 불똥을 미리 걱정한 방송사 측은 그를 드라마에서 배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물러난 1988년까지 긴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박용식은 서울 도봉구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만남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용식의 사연을 듣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며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박용식은 이미 지나버린 고통을 웃음으로 지워내며 “앞으로 드라마 속 전 대통령의 역할은 내가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용식은 1993년 MBC 드라마 ‘제3공화국’을 비롯해 ‘제4공화국’ 등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할을 맡아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에 없다. 1967년 동양방송(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출연한 숱한 드라마만이 그를 추억하게 한다.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