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色 벗은 임상수 영화… 류승범 주연 ‘나의 절친 악당들’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한패인 지누(왼쪽)와 야쿠부. 이들은 별 죄책감 없이 돈을 훔치고 사람을 때리는 악당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인간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다. 이가영화사 제공
정체불명의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지누(류승범)는 재벌 회장(김주혁)의 집에서 나오는 차량을 쫓는 도중 뜻밖의 사고를 맞닥뜨린다. 5만 원권이 꽉꽉 들어찬 트렁크를 운반하던 차가 대형 트럭과 부딪히며 ‘배달 사고’를 당한 것. 사고 차량을 견인해 간 나미(고준희), 폐차장 직원 야쿠부(샘 오취리)와 부인 정숙(류현경), 그리고 지누는 작당해 트렁크를 나눠 갖는다. 비자금을 도난당한 재벌 회장의 수하와 정체불명의 기관은 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하녀’ ‘돈의 맛’처럼 사회 비판적 성격의 영화들을 만들어 온 임상수 감독의 작품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발랄하고 가볍다. 지누 일당은 고민 없이 돈을 훔치고 생각 없이 돈을 쓴다. 하지만 이면에는 역시 ‘임상수 스타일’이 녹아 있다. 지누는 비정규직 인턴으로 고용 불안 신세, 나미는 철거지역의 다 무너져가는 집에 사는 주거 불안 신세, 야쿠부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신분 불안 신세다. 권력자의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기성세대의 모습은 “우린 악당들”이라 위악하면서도 서로를 먼저 걱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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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영화 데뷔작인 오취리 외에도 영화에는 연기 초보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돈가방 배달 차량의 운전기사(권력자들의 온갖 비밀을 모두 보고 듣는다는 바로 그 직업)로 깜짝 출연해 욕설 연기를 선보이다 장렬히 ‘전사’하는 임 감독 본인이다.
“젊은 세대들이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충격받았다”(지난달 28일 열린 제작보고회)던 임 감독이다. 이 장면은 마치 기존의 ‘임상수 스타일’을 버리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져 꽤 의미심장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