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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선미]나의 아름다운 시내 면세점

입력 | 2015-06-25 03:00:00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내게는 크리스털이 박힌 금색 핸드백이 있다. 2003년 해외여행을 앞두고 서울시내 한진면세점에서 20만 원에 샀다. 매출 부진으로 문 닫는 면세점이 80% 내린 가격이었다. 얼마 후 같은 가방이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나와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래도 이 가방을 보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폐업 직전의 시내 면세점이 떠올라서.

지금 유통업계에는 살벌한 낙찰 경쟁이 치러지고 있다. 그동안 6곳이던 서울시내 면세점의 절반 수준인 3곳을 정부가 새로 허가하기로 한 것이다.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장사가 안 되는 마당에 전년 대비 32.2% 성장한 국내 시내 면세점(5조4000억 원 규모)은 그야말로 ‘유통 초원의 빛’이다.

그런데 국내 시내 면세점이 뜬 건 최근의 일이다. 사실은 명멸(明滅)의 연속이었다.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아 1979년 동화면세점, 1980년 롯데면세점이 생긴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토산품과 해외 명품을 사면서 폭발적으로 컸다. 정부는 88올림픽을 앞두고 면세점 시장을 확 풀었다. 1989년 29개까지 생겼다가 일본 버블경기가 꺼지자 상당수 폐점했다. 2000년대 ‘면세점 르네상스’가 왔지만 외국인보다 내국인이 더 쇼핑하면서 정부 규제가 강화됐다. 지금의 국내 면세점 시장이 ‘살아남은 자들의 리그’가 된 이유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회사들은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고 한다. 하긴 시험원서 내놓고 열심히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부는 특허심사위원회를 꾸려 관리역량, 경영능력, 관광 인프라 등을 심사하겠다고 한다. 허나 노파심이 든다. 치열한 경쟁 속에 정부와 업계는 정작 중요한 소비자를 얼마나 보고 있나. 국가의 사활도 생각하나.

나는 아름다운 면세점을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의 마음을 얻는 면세점이다. 나는 핀란드 헬싱키 면세점에서는 무민 캐릭터 인형, 일본 오사카 면세점에서는 고베의 롤케이크와 교토 찻잔을 사며 면세점 쇼핑의 기쁨을 누린다. 그 나라만의 ‘향기’가 있는 물건에 손이 간다.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팔 것인가.

여행도, 해외 직구도 많이 하는 소비자에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롯데면세점이 올해 1∼5월 매출을 분석했더니 명품 매출은 15%에 그쳤다. 2009년만 해도 이 면세점 매출의 40%가 명품이었다. 관광경기를 심하게 타는 면세점 사업은 소비자 취향도 ‘디테일하게’ 계속 바뀐다. 중국 소비자의 행보도 심상찮다. 젊은 바링허우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가 일본으로 여행 가서 돈을 쓰고 있다.

시내 면세점은 국익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의 동반자적 접근이 필요하다. 면세제도 보강이 필요하면 지금이라도 손봐야 한다. 면세점 특허권을 따는 유통회사에 홈쇼핑업계의 방송통신발전기금과 같은 관광발전기금을 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5년마다 신규 입찰’인 현 특허 방식도 따져볼 일이다. 모두에게 ‘열린 기회’이지만 지속적 투자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참에 일반 상점들이 외국인에게 즉석에서 소비세를 빼주는 제도를 적극 검토하면 어떨까. 업주의 탈세가 우려된다면 기존 성실납세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시험 운영하면 된다. 국무총리가 관련 부처를 모아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면세+관광’이야말로 창조경제 아닌가.

나는 다시는 망한 면세점에서 폭탄 세일하는 핸드백을 사고 싶지 않다. 외국인이 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면세점에서 아름답게 소비하고 싶다.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