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해로 벼 고사… 배추모종엔 마름현상 계곡-지하수 말라 급수차로 식수 공급
○ 목마른 대지, 타는 농심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한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 마을은 최악의 가뭄으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심정이다. 47가구 주민들이 370ha 농사를 짓고 있는데 현재 74ha의 논이 모내기를 못했다. 어렵사리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도 어린모들이 타들어가고 있다. 논에 물을 대야 할 어룡 저수지와 김천말 저수지는 오래전 바닥을 드러냈다.
강원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에서 5만 m²가량의 밭에서 고랭지 배추를 키우는 전우식 씨(50)는 요즘 하늘만 보고 있다. 보통 이맘때면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땅 아래 20cm 정도까지 바짝 말라 심을 수가 없다. 해발 800∼850m 고지대까지 물을 끌어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종 심기를 마친 배추밭에서는 잎마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농 차질은 경기, 강원, 충청 지역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특히 전국 고랭지 배추 대부분을 생산하는 강원 평창, 정선, 삼척, 태백 지역의 상황은 심각하다. 강원도에 따르면 파종 시기를 맞은 도내 밭작물은 계획량 3만2510ha로 이 가운데 9652ha(29.7%)에서 파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혹독한 봄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커지자 11일 인천 강화군 하점면의 한 논에 군청 급수차가 긴급 출동해 물을 대고 있다. 강화=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2리와 금강송면 쌍전1리 마을 주민 33명은 지난달 21일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지자체의 급수차를 통해 생활용수를 공급받고 있다. 지하수에 의존하는 인천 옹진군의 섬 지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육지와 교량으로 연결돼 상수도를 공급받는 영흥도를 제외한 북도, 자월, 연평, 대청 등 4개면은 지하수가 고갈돼 하루에 2시간이나 2, 3일에 1시간씩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주요 댐 수위도 급감하고 있다. 11일 오후 4시 현재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 수위는 153.13m로 역대 최저치인 1978년 6월 24일의 151.93m에 1.2m 차로 근접했다. 수위가 150m 아래로 내려가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발전 방류가 어려워진다. 충북 충주댐 수위는 같은 시간 115.25m를 기록했다. 사상 최저 수위인 1994년 6월 29일의 112.3m에 3m도 채 남지 않은 수준이다.
○ 기우제 지내는 판에 정부는 태평?
가뭄 피해 방지를 위해 농민과 지방자치단체, 유관 기관들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양수기와 살수차, 스프링클러를 총동원해 논과 밭에 물을 대고, 소방서는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5월부터 이달 7일까지 각종 용수 지원으로 436건 2015t을 공급했으며 최근 들어 공급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비를 바라는 애타는 마음은 기우제로 이어졌다. 올 3월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댐관리단이 기우제를 지낸 데 이어 이달 들어 강원 평창군, 영월군, 정선군, 오대산 월정사가 기우제를 봉행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가뭄 ‘컨트롤타워’를 가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전국 누적강수량이 평년 대비 50% 이하일 때 ‘가뭄 극심’ 상태로 분류하고 국민안전처 내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한다. 현재 전국 누적강수량이 이보다 높다는 이유로 컨트롤타워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토부에서 댐을 통한 용수 관리를, 환경부에서는 비상급수를 운용하는 방식으로 가뭄에 대처하고 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2013년부터 비가 많이 안 와서 가뭄이 시작됐다고 봐야 하는데 올해 누적강수량만 가지고 평년과 비교해서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누적강수량 50%가 될 때 컨트롤타워를 가동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