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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유영]‘내향적 소비’의 시대

입력 | 2015-06-05 03:00:00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배우 이나영과 원빈의 ‘가마솥 결혼식’이 최근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강원도 정선의 푸른 밀밭에서 사랑을 맹세했다. 정선은 광부의 아들인 원빈의 고향이다. 이들은 “태어나고 자란 땅 위에 뿌리 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굳건한 나무처럼 살겠다”고 했다. 신랑 신부와 소수의 하객은 결혼식을 마친 뒤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먹었다.

결혼이야말로 일생에서 몇 번 안 되는, 소비의 ‘큰손’이 되는 시기다. 하지만 요즘엔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만 초대해 주례도 없이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물도 다이아몬드 반지를 고집하지 않는다. 작고 소박해도 의미 있는 선물을 교환한다.

이처럼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소비하는 행태, 즉 ‘내향적 소비’가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이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과시적 소비와 대비된다. 사실 대개의 한국인들은 그동안 ‘인정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르르 음주가무를 벌이기보다 집에서 홀로 술을 즐기고, 여럿이 가야 민망하지 않을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생겨났다. 요란하게 돈을 쓰기보다는 피겨(사람 동물 등을 본뜬 모형)를 사 모으고 색칠공부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런 시대정신은 정신의학자인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미움 받을 용기’의 인기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은 15주째 베스트셀러 1위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부터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에 이르기까지 남의 시선에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는 게 요지다. 저자는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내향적 소비 성향은 최근의 사회 경제적 환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즘엔 극도로 경쟁적인 분위기로 삶이 팍팍해져 남의 시선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졌다. 이런 환경에선 내면을 돌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나을 수 있다. 또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올 정도로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현재’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됐다.

물론 내향적 소비가 내수 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콰이어트’는 내면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 책은 내성적인 사람들이 소극적이고 성과가 저조하다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내부에서 에너지를 찾으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 소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향적 소비는 나를 내 삶의 주인일 수 있게 한다.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파티 걸’로 유명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온갖 브랜드의 가방과 옷을 한 보따리씩 사왔다. 그랬던 그녀가 최근 에코 백(면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그것도 스틸레토 힐이 아닌 흰색 운동화를 신고서. 그녀는 이제 명품은 ‘끊었다’고 했다. 그나마 돈을 쓰는 항목은 명상 요가와 퍼스널트레이닝(PT)이라고 했다. 그녀는 “명품을 휘감고 다녀봐야 부질없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활짝 웃는 모습이 예전보다 예뻐 보였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