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가사 12곡 완창, 초고음질 CD에 담아 낸 여창가객 강권순
십이가사 완창 음반을 낸 여창가객 강권순. 그는 “20, 30대엔 대중화와 실험에도 매달렸지만 이번 작업에는 뿌리가 있어야 후대에 열매를 맺는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악당이반 제공
여창가객 강권순(46)이 오늘날 전해지는 12가사(歌詞) 모두를 경남 함양의 한옥에서 하루 동안 완창해 담은 음반 ‘강권순 십이가사’를 냈다. 가사는 한국 전통 성악곡 양식인 정가(正歌)의 세 분류(가곡, 가사, 시조) 중에서도 가장 드물게 실연되는 장르다. 완창 자체로도 희귀한 실황을 현존 최고 음질의 음반 형태인 SACD(슈퍼 오디오 CD) 4장 세트에 담아냈다. 제작사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는 “한 음악인의 새 앨범이 제작비가 많이 들고 제작이 까다로운 SACD 네 장짜리로 발매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열두 가사(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춘면곡 길군악 어부사 상사별곡 권주가 수양산가 처사가 양양가 매화가)가 담긴 앨범의 총 재생시간은 4시간 6분 49초. 어부사 한 곡만 해도 42분 33초에 달한다. 가사에는 판소리와 달리 가창의 노고를 잠시 덜 아니리(대사)조차 없다. 강권순은 “가사는 호흡이 길고 음역이 높으며 속소리(일종의 가성)를 거의 쓰지 않고 진성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시조는 물론이고 가곡과 비교해도 훨씬 까다롭다”고 했다. 그는 연습에만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강권순은 가장 진보적인 소리꾼 중 한 명이다. 자유즉흥 음악의 달인 김대환(타악), 강태환(색소폰)과 여러 차례 한무대에 섰고 컴퓨터음악과도 협연했다. 그는 이번에 뿌리를 단단히 잡았다. “박물관화돼 가는 가사의 살아있는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이번 작업에 임했습니다.” 강권순은 김월하 명창(1918∼1996)의 직계 제자 중 하나다.
강권순의 가사는 10∼13일 세계 공연예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에도 울려 퍼진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재해석한 실험극 ‘리어 드리밍’ 무대에 선다. “이번 무대의 중심은 바로 가사 ‘상사별곡’입니다. 언젠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우리 정가와 협연하는 날이 오길 꿈꿉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