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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마이뻰라이”… 젊은층은 정치에 무관심

입력 | 2015-05-22 03:00:00

[태국 쿠데타 1년]평온 되찾은 방콕’ 현지 르포




시위 사라지자 도심 활기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 쇼핑몰 지역 격인 태국 방콕 수쿰윗 지역 아속 사거리에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지난해 초 방콕 셧다운 당시 시위가 격화돼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됐던 곳이다. 22일로 군부 쿠데타 발발 1주년을 맞은 태국은 겉으로는 상당 부분 안정을 되찾았지만 정치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방콕=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전주영 기자

독재자가 물러났지만 오히려 정국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집트나 리비아를 보면 ‘파괴’보다 건설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22일로 쿠데타 1년을 맞아 방문한 태국에서도 “군부 쿠데타 이후 사회가 안정되어 좋다”는 시민들의 말을 들으면서 ‘쿠데타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혼돈스러운 의문에 휩싸였다. 그런 한편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성공시킨 대한민국 역사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자부심도 들었다.

쿠데타 발발 1년을 맞은 수도 방콕의 분위기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랐다. 곳곳에 배치된 군인들의 모습이 경직된 분위기를 연출하긴 했지만 시민들은 “눈만 뜨면 네 편, 내 편으로 갈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던 시위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쿠데타는 매우 일상적인 정치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다. 1년 전 쿠데타만 해도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무려 19번째였다. 정국이 혼란하다 싶으면 바로 군부가 나와 정리해주는 식이다. 방콕에서 만난 직장인 윌라이랏 통숫 씨(34·여)는 “1년 전만 해도 방콕 곳곳에서 이른바 레드셔츠(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와 옐로셔츠(반탁신 세력) 시위대가 데모를 해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쿠데타 이후 싹 사라졌다”고 반겼다.

태국의 안정을 상징하는 수치가 관광객의 증가이다. KOTRA 방콕무역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28만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3% 증가했다. 7개월 연속 증가한 수치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완롭 락사웅 씨(41)는 “지난해 초만 해도 수시로 차량이 통제되고 사상자까지 발생해 해외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줄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며 “하지만 이젠 늦은 시간에도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시끌벅적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 태국인들이 누리는 안정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우선 2013∼2014년 상반기까지 잉락 친나왓 전 총리의 퇴진을 주장하며 계속된 반정부 시위로 타격을 받았던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만 해도 0.7%로 대홍수가 발생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도 4.5%에서 3.7%로 낮췄다.

정치 상황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국가를 개혁하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올해 10월 총선을 실시해 민간정부에 권력을 넘기겠다고 했지만 총선 시기를 내년 중반으로 연기하면서 약속을 어겼다. 태국 정치가 민정으로 복귀하려면 최소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그가 만들고 있는 개헌안은 선출 의원이 아닌 명망가 중에서 총리를 뽑고 상원 의원을 모두 임명직으로 전환하는 등 국민의 선거권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농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친탁신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이다.

태국의 군부 독재가 가능한 배경에는 ‘민주주의보다 경제’를 원하는 민심이 깔려 있다. 직장인 와란야 론나키티피숫 씨(23·여)는 “20대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 빨리 취업을 하거나 박사 학위를 따서 더 좋은 직장에 갈 궁리만 할 뿐”이라고 했다. 실업률이 매우 낮다(0.6%)는 것도 정권 입장에선 유리한 요소이다.

여기에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 여유 있는 국민성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경계하게 만든다. 김문영 KOTRA 방콕무역관장은 “국민의 95%가 소승불교를 믿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세에서 공덕을 쌓으라는 종교적 가르침이 국민성에 배어 있다”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잘 내지 않는 ‘마이뻰라이(Mai Pen Rai·‘괜찮아’라는 뜻)’ 마음가짐이 깊숙이 배어 있다”고 전했다.

태국 정국을 흔들 수 있는 뇌관은 사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8)의 사망이다. 이 나라는 입헌군주제이긴 하지만 총리보다 국왕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다. 쿠데타 배후세력도 상당 부분 왕실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태국의 미래가 사실상 차기 국왕에게 달린 가운데 서열 1위인 와찌랄롱꼰 왕세자(63)가 과거에 여색, 범죄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국 불안 요인이다. 왕실을 모독하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국민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차기 국왕으로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시선이 많다. 현 국왕이 타계할 경우 왕정 유지와 공화제 전환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군부 쿠데타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국제 사회도 걸림돌이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면서 경제협력을 꺼리고 있으며 일부 군사 원조도 중단했다.

방콕=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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