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신기록 1960억원 그림의 그늘
《 1억7936만5000달러(약 1960억 원). 평범한 월급쟁이로서는 감 잡기 어려운 액수다. 1955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가로 146cm, 세로 114cm 크기의 유채화 한 점이 지난주 이 금액에 거래됐다.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가 “세계 미술경매 사상 최고 금액”이라고 발표한 그림 ‘알제의 여인들’은 대번에 피카소가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인 것처럼 시끌벅적 거론됐다. 경매회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장엄하고 원기 왕성하며 충실하게 완성된 이 회화는 피카소가 19세기 프랑스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에게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해 가던 무렵의 작품”이라고 상찬했다. 수많은 언론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 전했다.》
이번 피카소 그림 거래 전까지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보유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1969년작 ‘루치안 프로이트 습작 3점’(부분). 동아일보DB
그림을 구매한 낙찰자의 정체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상황 역시 구설에 올랐다. 종전까지 미술 경매 최고가 작품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 습작 3점’은 2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재벌인 스티븐 윈의 전처 일레인 윈이 1억424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번 경매에서 피카소의 작품은 전화로 참여한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고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디언은 “비밀을 원한 그 컬렉터는 결국 누구에게도 이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 그 순간 비밀이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만 보기 위해 이 그림을 그 가격에 사 간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최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 낙찰가인 1억7936만5000달러에 거래된 파블로 피카소의 1955년 유채화 ‘알제의 여인들’. 외젠 들라크루아가 1834년 완성한 동명 회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연작 15점 중 마지막 작품이다. 동아일보DB
미국 뉴욕타임스의 데이터섹션 ‘업샷(The Upshot)’은 범주를 넓혀 “세계 경제 전반에 뿌리 깊게 형성된 극심한 부의 편중 현상을 확인시켜 준다”고 분석했다. 그림 한 점에 쓸 수 있는 돈의 상한을 전 재산의 1%라고 가정할 때 ‘알제의 여인들’을 구매할 수 있는 이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100대 억만장자’ 중 단 50명뿐이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 투자로 인한 수익이 아니라 ‘빈부격차의 심화와 가속화’라는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미술시장에서의 가격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이야기한 사회계층 간의 극단적인 소득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전했다. 작품 가치와 연결 짓기 어려운 이번 경매 신기록은 주식과 채권시장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대체시장으로 몰린 잉여자본의 힘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