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만 5년째를 보내고 있는’ 두산 외국인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용병이란 꼬리표를 떼고 두산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개인타이틀 하나 차지한 적 없지만, 가장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성을 상대로 유독 강했던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스포츠동아DB
■ 두산 니퍼트
2011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 후 다승왕도, 방어율왕도, 탈삼진왕도 해본 적이 없다. 같은 시기에 뛰었던 외국인투수 6명이 하나둘씩 개인 타이틀 트로피를 받아드는 동안, 늘 빈손으로 조용히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새 시즌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 마운드에 섰다. 그렇게 ‘용병’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두산 선수’로 자리를 굳혀갔다.
더스틴 니퍼트(34). 두산은 5년 전 키가 203cm에 달하는 이 외국인투수와 계약한 뒤 단 한 번도 용병 에이스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니퍼트는 두산에 입단한 2011년을 기점으로 모든 KBO리그 투수들을 통틀어 통산 승리(55승), 방어율(3.21), 퀄리티 스타트(71회), 퀄리티 스타트+(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44회), 투구이닝(716이닝), 경기 평균 투구수(103.9개), 평균 투구이닝(6.1이닝), 이닝당 출루허용(1.20) 1위에 올라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난 적은 없어도,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견고한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이닝 끝나면 하이파이브…감사 표현
매달 소외계층 어린이들 초대 이벤트
한국은 내 홈…당연히 뜻 있는 일 해야
몸관리 비법? 나만의 ‘루틴’ 지키는 것
용병 아닌 두산맨으로 꼭 우승하고파
-키가 커서 어릴 때 농구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프로야구선수가 돼 한국까지 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실 야구, 농구, 축구를 다 했다. 축구도 괜찮게 했고, 농구도 잘했지만, 야구를 더 잘했다. 무엇보다 야구라는 ‘게임’이 재미있었다.”
-형제들도 야구선수 아닌가.
“나와 쌍둥이 동생인 데릭도 2003년 드래프트로 뽑혀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지만, 2008년에 그만뒀다. 팔꿈치, 어깨, 무릎 등등 부상도 많았고 수술도 했다. 또 어린 동생(15세 아래인 로건)이 야구선수다. 대학리그가 끝나서 지금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로건도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어 한다. 투수도 하고 내야수도 하는데, 심지어 너클볼도 던진다. 고등학교 때는 한 게임에서 삼진 17개, 18개를 잡은 적도 있다.”
-스포츠 패밀리다. 유전자가 남다른가보다.
“동생이 사실 나보다 낫다. 나는 너클볼을 못 던지니까.(웃음) 나는 실패했는데, 동생은 계속 던지고, 던지고, 던지더니 결국 성공하더라.”
“솔직히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소속팀(텍사스)이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해서 다른 길을 찾았다. 일본 요미우리에서 제의가 와서 협상도 했지만, 그 계약도 잘 안 됐다. 그런데 그 후에 두산에서 연락이 와서 사인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내게 정말 행운이었다.”
-두산에도 행운인 것 같다. 5년 통산 기록이 전 투수 통틀어서 대부분 1위다.
“이게 다 두산이 좋은 팀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안 좋은 팀에 있었다면 개인기록이 이만큼 좋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좋은 공을 던지기 이전에 좋은 수비와 좋은 타격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팀이 좋아서 가능했지, 나만 잘해서는 아니다.”
-이제 한 살씩 나이도 먹어 가는데 몸 관리도 정말 잘하나보다.
“나이는 모두가 똑같이 들어가니까.(웃음) 다른 것보다 그냥 ‘루틴’을 잘 지키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 같은 팀 베테랑들이나 유명한 투수들에게 ‘몸 관리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들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고 하더라. 특히 에디 과르다도(2009년 텍사스 시절 동료)가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선발로 나가서 잘했든, 못 했든, 혹은 로테이션을 걸렀든,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는 게 중요하다.”
-두산에서의 5년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처음에는 한국이나 한국야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한국이 정말 좋다는 걸 느꼈다. 두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내 가족 같고, 이제 한국이 또 다른 홈타운처럼 느껴진다. 매년 스프링캠프지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동료들을 만나고, 같이 운동하고, 올해 또 잘해보자는 얘기나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을 때, 오랜만에 집에 와서 가족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이 정말 좋다. 아직 말하는 것은 서툴지만, 이젠 한국말을 많이 알아들을 수 있다. 선수들 모두와 최대한 소통하려고 한다.”
-등판했을 때 이닝이 끝날 때마다 야수들을 기다렸다가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한 뒤에야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습관도 있다.
“미국에서부터 그렇게 했다. 코치들이 가끔 ‘기다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앉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우리는 한 팀이고, 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나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나. 그냥 내 감사를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에서 내가 받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싶었다. 미국에 있을 때 베테랑 선수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선행하는 걸 많이 봐서 나도 배운 것 같다. 이제 한국도 내 ‘홈’이니까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어린이들이 하루라도 야구장에 와서 경기를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그날을 재미있게 즐겼으면 좋겠다.”
-두산 선수로 뛰는 동안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선수들의 목표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 야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겨야 재미있는 게 베이스볼 게임이다. 그리고 시즌이 다 끝난 뒤에 최고의 성공은 당연히 ‘우승’이다. 그동안 삼성이 너무 오랫동안 우승을 했다.(웃음) 올해 우리 팀이 그걸 바꿨으면 좋겠다. 물론 아직은 올 시즌의 끝이라는 먼 곳을 바라보기보다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매 경기 내 역할을 잘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성공적인 시즌의 끝이 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그때 우승팀이 돼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까지 삼성전에 유독 강했다. 만약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삼성은 좋은 팀이다. 운이 좋아서 4년간 우승을 한 게 아니다. 선발도 좋고, 불펜도 좋고, 수비도 잘하고, 타격도 잘하고, 팀워크도 좋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선 내가 썩 좋지 못했다. 만약 우리 팀이 다시 챔피언십을 놓고 삼성과 맞붙는다면 지난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다. 야구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켜봐달라.”
● 더스틴 니퍼트는?
▲생년월일=1981년 5월 6일 ▲국적=미국 ▲출신교=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키·몸무게=203cm·103kg(우투우타) ▲프로 경력=애리조나(2005∼2007년)∼텍사스(2008∼2010년)∼두산(2011년∼ ) ▲2015년 연봉=150만달러(약 16억3000만원) ▲2015년 성적=6경기 3승 방어율 2.39(37.2이닝 10자책점) ▲KBO리그 통산 성적=113경기 55승27패 방어율 3.21(716이닝 570탈삼진)
광주|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