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을 바라보는 야권 인사들은 요즘 이 같은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무모할 정도의 ‘돌직구’를 던져 국면 반전을 시도했던 노무현 스타일과 문재인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는 얘기다. 계란이 날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회 연설을 강행하고, 열세가 뻔한데도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를 받아들인 일화 등이 단골메뉴다.
겉으로 비친 문재인의 모습은 분명 ‘친구 노무현’과 다르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 후 낙선인사차 광주공항을 찾았을 때 항의 시위대를 피해 다른 출구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최고위원회의 공개석상에서 주승용을 자극할 것이 뻔한 정청래의 ‘막말’을 남의 일인 양 방치했다. 그래서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우리를 자극해 ‘나갈 테면 나가 봐라’는 최후통첩 아니냐”고 부글부글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지자들에게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도 없어 보인다. 그냥 무기력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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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브랜드는 지금도 야권 지지자들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핵심 고리다. 문재인 주변은 그 외피 속에 둥지를 튼다. 그럴수록 ‘노무현 정치’는 불가침의 성역이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성완종의 특별사면이 논란이 되자 문재인은 “우리는 돈 한 푼 안 받았으니 이명박 정부에 물어봐라”고 발끈할 정도다. 그만큼 노무현의 그늘이 문재인에게 절실하다는 증거다.
스스로 선을 긋고 퇴로를 막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문재인을 위시한 친노 그룹은 공유할 만한 노무현 가치를 외면하기도 했다. 노무현이 성사시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자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오로지 “뭉치면 이긴다”는 선거 공학만 번득였다. 문재인 사단은 애써 이런 과거는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후보 시절 당시 김대중(DJ) 정부의 비리가 터져 나오자 “나는 DJ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승계하겠다”고 치고 나갔다. 하지만 아류 정치는 그 틀을 깨기 어렵다. 그래서 문재인이 “친노 수장이라는 말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아무리 힘을 줘서 말해도 당 안팎에선 “그 말을 어떻게 믿나”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나온다.
노무현은 2003년 청와대 진용을 짜면서 정책통 A 씨를 발탁했다. 핵심 측근이었던 청와대 ‘386’그룹은 “도대체 A 씨가 노무현 정권 창출에 무슨 일을 했느냐”며 노무현을 압박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세력 내부에서 흔히 벌어지는 권력투쟁 양상이었다. A 씨는 “이런 상황이면 내가 일을 할 수가 없다”며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노무현은 “앞으로 내 허락 없이 A 씨를 흔들지 말라”며 측근 386그룹의 요구를 일축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선을 그을 것은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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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그림자는 문재인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노무현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략 없는 노무현 정신은 공허할 뿐이다. 문재인은 문재인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