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문학동네·2003)
이 책은 위대한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아랍인 모하메드(그는 ‘모모’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성매매 여성이 낳은 사생아를 돌보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그녀는 모모에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비록 로자 아줌마가 매달 누군가 부쳐주는 돈을 받고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땐 슬펐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로자 아줌마가 죽어가자 열네 살 모모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영화에 음향을 입히는 녹음실에 들르게 되면서부터였다. 거기서 모모는 음향을 제대로 입히기 위해 몇 번 씩이나 필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보며 사람의 생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예를 들자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가 생이 짓밟히고 파괴돼버리기 이전에 생기 있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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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모가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도 살 수 있나요?” 기억이 희미해진 할아버지는 그 여자의 이름도 잊고 말았다. 하지만 모모는 사랑하면서 살기로 결심한다. 로자 아줌마 대신 우산 아르튀르를 ‘사랑해야 한다’고 되뇐다.
에밀 아자르는 작가 로맹 가리의 가명이다. 로맹 가리는 이 책에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사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파릇파릇한 봄, 혹시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애착을 가질 대상을 만들어볼 일이다.
신민기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