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라 씨(46)는 가사도우미 전문배우라 할 만하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월화드라마 ‘여자를 울려’를 포함해 지금까지 20편에 가사도우미로 출연했다. 여기에 더해 아파트 부녀회장, 동네 아낙, 악다구니를 쓰는 시장 상인 등 ‘아줌마’ 역할로 나온 드라마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보통 극중 사모님에게 “사장님 들어오셨어요”라고 전하는 한마디 대사가 전부다. 하지만 ‘압구정 백야’(MBC)에서 일일 요리사로 나왔을 때처럼 대본 3, 4쪽 분량을 혼자 떠드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하도 자주 나와 얼굴이 알려지다 보니 행사나 축제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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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23년인 고진명 씨는 극중 배역에서 ‘출세’했다. 예전엔 아파트 경비원 역할을 많이 맡아 ‘경비원 전문배우’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줄면서 배역도 적어진 요즘엔 ‘당신만이 내 사랑’(KBS)에서처럼 기업 이사 역할을 자주 맡고 있다.
판사, 회장, 공인중개사, 취객, 교장, 경찰서장 등을 두루 연기한 고 씨의 강점은 평범함이다. 고 씨는 “나처럼 ‘허투루’ 생긴 사람들은 노숙자부터 신부까지 다양한 역을 할 수 있다”며 “재연 프로그램이 많았던 과거에는 한 달에 프로그램 25개에 출연하기도 했고, 스케줄이 꽉 차서 섭외 요청을 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故) 최진실 씨와 통신사 광고를 찍기도 했다. ‘단역은 개성 넘치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고 씨의 지론. 고 씨는 “단역은 한 장면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면 다시 만회할 기회가 없다”며 “주인공이 돋보이도록 있는 듯 없는 듯 도와야 하기 때문에 튀는 연기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회사에 가면 한 명쯤 있을 듯한 ‘김 과장’의 얼굴을 갖고 있는 전해룡 씨(50)는 화이트칼라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야인시대’(SBS)에선 동아일보 기자를 맡았고, 최근엔 ‘힐러’(KBS)에서처럼 의사가 단골 배역이다.
조·단역 배우는 드라마 속 비중처럼 현실에서도 ‘을 중의 을’이다.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가 오르면서 조·단역 배우의 입지는 축소되는 추세다. 단역 배우는 70분 길이 드라마 한 회에 출연하면 대략 30만∼50만 원을 받는다. 김 씨는 “요즘엔 단역을 연기자 대신 보조출연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작년에는 수입이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출연료 미지급도 빈발하고 있다. 한국연기자노동조합 관계자는 “제작사 부도 등으로 미지급된 출연료 18억 원 중 절반이 조·단역 배우의 몫”이라며 “출연료를 못 받아 빚을 지거나 생계가 어려운 연기자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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