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준 정치인 33명 자백해 정계의 인적쇄신 몰고 온 한보 정태수 회장 사건의 복사판 MB 정부 겨냥한 기획사정이 박근혜 정부 ‘자해사정’으로 풍향 바뀌다 김진태 검찰총장 30년 특수통 검사의 직을 걸고 성완종 메모의 진실 밝혀야
황호택 논설주간
이 전 대통령은 주로 이상득(SD) 전 의원이 대선자금 출납을 했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그 당시에 캠프에 있는 사람들은 다 SD한테 돈을 받으러 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두 번의 경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돈을 모으고 나눠주는 역할을 친박 핵심들이 맡았음이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성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이번 사건은 시신이 없는 살인 사건과 같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드나들 때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요란하다가 심증(心證)은 있지만 정작 물증(物證) 인증(人證)이 부족해 기소가 어렵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증거법리를 잘 알기 때문에 성 회장의 메모에 금액이 똑떨어지게 적힌 사람들도 일단 잡아떼는 것 같다.
‘불사조’ 홍준표 경남지사도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성 회장이 돈을 주었다면 홍 지사가 당 대표가 될 경우에 대비해 공천을 부탁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성 회장은 죽었지만 전달책이 검찰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니 ‘모래시계 정치인’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다.
성 회장이 친박(친박근혜) 실세들에게 준 돈은 “정권 잡으면 잘 봐 달라”는 보험금이다. 그는 절박한 상황에서 정권 실세들을 만나고 전화로 SOS를 쳤다. 그러나 구난(救難)의 동아줄은 내려오지 않고 영장실질심사의 날이 밝아오자 ‘성완종 리스트’ 메모를 윗옷 주머니에 넣고 북한산에 오르며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사살 같은 녹음 인터뷰를 했다.
박근혜 정부는 친인척과 측근 비리가 없다는 것을 최대 강점으로 자부하며 이번에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친이(친이명박)도 견제하면서 공무원의 기강도 잡고 국정의 동력을 회복하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 정권을 향해 쏘았던 미사일이 부메랑으로 날아와 아군 진영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깨끗한 정부’ ‘깨끗한 대통령’을 자임한 박근혜 정부에서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3명이 연루돼 있고 이완구 총리는 ‘걸어다니는 폭탄’이 돼버렸다. MB정부 기획사정이 단박에 박근혜 정부 ‘자해사정’으로 풍향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고해성사하고,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해 읍참마속(泣斬馬謖)하고, 정치자금 개혁을 단행하는 중대 결단을 내리는 길밖에 없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