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중학교과서 ‘독도 도발’] 日 교과서 얼마나 改惡했나
검정 결과를 보면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치밀하고 과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까지 염두에 두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을 교과서에 기술해 국제 홍보전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의중도 엿보인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착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현행 교과서는 18종 가운데 4종만 한국의 ‘불법 점거’라는 표현을 썼으나 수정본은 기존의 3배인 13종이 이 같은 표현을 썼다.
일본 어민들이 과거 독도에서 강치잡이 등 어업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관련 사진과 기사, 사료를 다양하게 게재한 점도 주목된다.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영유권 주장의 구체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통신은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관한 기술 분량이 현행 교과서의 2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진보 성향 출판사인 ‘마나비샤’가 출판한 역사 교과서는 애초 불합격 판정(왼쪽)을 받았지만 내용을 고쳐 합격했다. ‘김학순의 증언’이란 제목(①) 아래 자세히 기술된 위안부 내용,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그림(②), 공문서에서 확인된 위안소를 표시한 지도(③)를 모두 삭제하고서야 합격으로 처리됐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교육출판’에서 펴낸 역사 교과서 역시 ‘한국과의 사이에 그 영유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어 미해결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표현에서 이번에는 ‘1952년 이래 한국이 일방적으로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도발 수위를 높였다.
한편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된 사건과 관련해 ‘시미즈서원’ 역사 교과서는 종전에 ‘경찰 군대 자경단이 살해한 조선인은 수천 명에 달했다’고만 적었으나 이번에는 ‘명수에 대해서는 통설이 없다’고 바꿨다. ‘일본문교출판’도 ‘경찰이 조선인 등 수천 명을 살해했다’고 한 종전 문구를 ‘자경단 및 군대 경찰에 의해 많은 조선인과 사회주의자 및 중국인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적어 조선인 학살을 희석했다.
진보 성향의 전현직 교사와 학부모들이 세운 출판사인 ‘마나비샤(學び舍)’의 역사 교과서는 특이하게도 불합격 판정을 받은 당초 교과서와 재신청해 합격한 교과서가 함께 나열돼 있었다. 100여 종의 교과서 중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것은 마나비샤와 지유샤 등 두 개뿐이다.
그나마 이번에 가장 눈에 띄는 교과서는 마나비샤 교과서의 불합격판.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를 설명하며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그림(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작품)과 위안소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실렸었다. ‘김학순의 증언’이란 소제목 아래 일본군 위안부 역사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수정본에는 그림과 지도가 모두 사라졌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처리됐다.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설명하는 문단에선 “현재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 성향의 전현직 교사와 학부모들이 세운 출판사인 마나비샤는 그나마 중학교 교과서 중 유일하게 위안부 내용을 기술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폭 바뀐 내용은 일본 정부가 어떤 잣대로 교과서를 검정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교과서를 버젓이 전시한 것은 향후 교과서 제작의 ‘가이드라인’을 출판사에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도 한국의 영토 주권에는 영향이 없겠지만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주도할 세대들에까지 잘못된 역사관이 입력되면 한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