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명문대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시간강사 박모 씨는 한 달에 120만 원을 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부친에게 매달 100만 원씩 받아 아이와 아내까지 세 식구 살림을 꾸렸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부친이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버지보다 더 많이 공부했는데 아버지 정도의 중산층 삶을 꿈꾸는 것이 사치스럽게 됐다”고 했다.
극단적인 사례 같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부모와 자녀 세대 모두 중산층에 안착하는 경우가 부쩍 줄어들었다. 동아일보와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팀이 지난 10년(2001∼2011년) 사이 4248가구의 변화를 추적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산층 대물림’에 성공한 가구는 12.7%에 불과했다. 중장년 세대는 일거리 없는 장수 인생이 두렵고, 청년 세대는 박 씨처럼 ‘고학력 워킹 푸어’로 전락하는 등 고용 불안의 복합적 위기가 한국 사회를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은 중산층이 65.6%라고 발표했지만 국민의 체감 수준은 훨씬 나쁘다. 1980년대 후반 전 국민의 60∼8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했다면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 그 비율은 20% 안팎으로 줄었다. 특히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과다한 교육비 지출이 중산층 추락의 원인이 되면서 ‘솟아날 구멍이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애써서 자식들 공부시켜봤자 소용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 세대만큼 살 수 없다”는 분노가 가득한 나라에선 희망도, 변화에 대한 의지도 생겨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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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구심점인 중산층의 기반이 허약해지면 계층 갈등은 커지고 성장이 갈수록 둔화된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바짝 서둘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야 부모 세대의 노동유연성과 임금피크제가 자식 세대의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중산층 복원과 확대는 한국 사회의 절박한 화두다. 튼튼한 중산층 없이는 나라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