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지식인의 몰락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인이 몰락하는 분명한 조짐은 자기가 배운 이론이나 지식의 틀을 진리화해서 주야장천 그 틀로만 세계를 보고 관리하려 덤비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식인의 몰락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대단해 보이는 지식으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진리의 대리인으로 치장해 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 자신이 믿는 한 가지 내용만 계속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사실 지식인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현상이다. 자신의 주인 자리를 이론이나 지식에 물려주고 정작 자기는 이론이나 지식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에게 사회적 사명이 있다면, 자기가 속한 세상이 전진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문제를 발견하여 제기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일이다. 정해진 답을 찾거나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이 철지난 것임을 인식하고 아직 포착되지 않은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그리 복잡한 말이 아니라 그저 상식일 뿐이다. 그런데 어떨 때는 상식이 제일 어렵다. 답을 찾는 일은 논증이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일은 세계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논증하는 일은 간혹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왜 재미있을까? 이야기 속에서는 자기가 흥미를 발동시키는 주체, 즉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을 이탈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식인은 세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이제 새로운 문제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제를 포착하고 푸는 과정에 개입하는 힘을 우리는 흔히 상상력이나 창의력이라고 부른다. 자신을 이탈해 있는 자기, 즉 정해진 이론이나 지식에 주인 자리를 양보한 지식인은 세계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내면의 활동성을 가질 수 없다. 시중에 나도는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을 가지고는 있어도 지혜를 발휘하지는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국가가 기능적으로만 움직여서 나타나는 현상은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우왕좌왕한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남 탓으로 세월을 보낸다. 점점 각자 도생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많아져서 사회적 유기성이 약화된다. 이때 부정부패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부정부패도 내용과 급에 차이가 있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최후의 보루다. 여기에서까지 부패가 심각하다면 극단적 상황이다. 조세 제도가 뒤엉키고, 군대에까지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면 이는 위기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만 가동시키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내용적으로는 이탈자들이다. 이제 일류 비평가는 필요 없다. 이류라도 내면의 자발성에서 출발한 참여자나 행동가가 필요하다. 모두 위기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