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흥행부진 이유, 기혼여성에게 물어보니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성애 영화다. 횟수는 잦다. 노출도 부족하지 않다. 근데 안 야하다. 주 타깃 층인 여성 관객들은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분위기가 약하다”고 입을 모았다. 호호호비치 제공
순간 정색한 표정. “왜 이래? 느끼하게.”
지난달 25일 선보인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출발이 지지부진하다. 1일 기준 24만 명(누적매출액 19억여 원). 하루 평균 5만 명이 안 된다. 해외에서 개봉 열흘 만에 4억 달러(약 4408억 원)를 벌어들인 기세는 찾을 길 없다.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왼쪽)와 크리스천(제이미 도넌)은 서로의 치명적 매력을 거부하지 못한 채 빠져든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선 충분히 피할 수 있을것 같아 보인다. 호호호비치 제공
A=일단 안 야하다. 포르노는 웬걸. 최근 한국 에로가 더 찐하다. 친구랑 어이없어 서로 쳐다봤다. 극장에서도 실소가 자주 들렸다. 딱 한 번, 이병헌 유행어 ‘로맨틱’이 나왔을 때 크게 웃었다. 무조건 벗으면 단가. 분위기가 끈적끈적해야지. 베드신도 색다른 게 없더라. 1990년대 한국 에로영화 수준이다.
B=책 보고 은근 기대했다가 실망이 크다. 소설도 짜임새야 별로지만 한 번씩 훅 들어오는 게 있었다. 엘리베이터 신은 정말…. 크리스천(제이미 도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갑자기 키스하는 장면이 짜릿했는데.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SM(사디즘+마조히즘)도 수위가 뭐 그러냐. 엉덩이 때리는 거 보고 쇼킹하길 바라나.
C=좀 불편했다. 솔직히 한국 정서랑은 안 맞지 않나. 남편(50대)도 “뭐 이런 걸 보냐”며 성질냈다. 차이를 인정해도 가학적 성애는 공감하기 어렵다. 여성을 노예처럼 다루는 방식도 기분 나빴다. 아무리 상대가 잘 생기고 부자여도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가 사랑에 빠진 맥락을 모르겠다.
A=할리퀸 로맨스(청소년 연애소설)의 성인 버전이더라. 모든 걸 다 가진 나쁜 남자가 평범한 여주인공에게 빠져 모든 걸 다 해주는 설정. 외국에선 여전히 먹힐지 몰라도 한국에선 힘들 거다. 그동안 그런 한국 드라마에 얼마나 단련됐는데.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은 같은 설정이라도 훨씬 쫄깃하다. TV만 틀면 공짜로 보는데, 왜 돈 내고 극장 찾나.
A=그래도 혹시나 하고 찾는 사람은 있겠지. 주위에 물어보면? 각자의 선택이지만 추천할 맘은 안 든다. 다만 인터넷 찾아보니 2, 3부가 나온다던데 뒤가 궁금하긴 하다.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1편이 너무 싱겁게 끝나서. 근데 원작자랑 감독이랑 다퉜다는데 나올 수 있을까.(실제로 샘 테일러존슨 감독은 원작자 E L 제임스와의 불화를 실토했다)
C=딴 건 다 제쳐두더라도 남자 주인공의 매력이 떨어진다. 허여멀게 가지고…. 구릿빛 피부에 더 늘씬해야지. 뭣보다 여자 꼬드기며 노트북 1대가 뭐냐. 우리 남편도 그 정돈 사준다. 물론 헬리콥터나 전용기는 없지만. 자꾸 어느 수위까지 SM을 할 것인지 계약서 쓰자는 거 보니 좀스럽기도 하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