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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신소재공학과, 태초에 소재가 있었고, 미래는 신소재에 달렸다

입력 | 2015-02-26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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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공학 연구에서 미세 조직의 정확한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 KAIST 신소재공학과에는 초미세 나노물질을 정확하게 관찰 및 측정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여러 대 설치돼 있다. 한 학생이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나노물질을 관찰하고 있다.

태초에 소재가 있었고, 미래는 신소재에 달렸다.

우리 주변은 대부분이 소재로 이뤄져 있다. 기발한 소프트웨어도 결국 소재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 특히 첨단 기기 분야에서 소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스마트폰의 성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이 좌우한다. 더 빠른 반도체 소재, 더 효율이 좋은 발광 소재, 전기 저장 능력이 더 우수한 소재가 개발돼야만 더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

KAIST 신소재공학과 정연식 교수는 요리에 비유하며 소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들이 최상급 식재료를 얻기 위해 직접 채집과 사냥까지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떤 요리든 그 맛과 품격의 한계는 결국 재료가 결정한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커피 맛은 원두가 좌우하듯, 첨단 기기 성능은 첨단소재가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업화시기에 가공과 조립 분야를 주로 육성하다보니 기초 소재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다. 최근 핵심 소재 확보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도 소재 연구 단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첨단 소재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신소재공학의 미래는 밝다.

KAIST 신소재공학과의 모토는 ‘창의적 우수 인재, 리더형 글로벌 인재 양성’이다. 학문과 산업을 망라한 모든 분야의 대세는 융합이다. 그런데 신소재공학은 학문의 성격 자체가 융합이다. 소재라는 토양 위에서 전자, 자동차,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KAIST 신소재공학과는 최상의 교육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학년말 약 30명 안팎의 1학년 무(無)학과 학부생들이 KAIST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하고 있다. 다른 대학의 동일 전공학과에 비해 비교적 적은 학생 숫자 덕분에 교수, 학생간의 친밀도가 깊다. 학생들이 신소재공학과 게시판 앞에서 애교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입생 무(無)학과 입학제도다. KAIST는 소속 학과 없이 입학해 자유롭게 기초 과목들을 수강하고 1학년을 마친 후 전공을 결정한다. 학과의 이동도 자유롭다. 국내에서 무학과 입학을 가장 오랫동안 뚝심 있게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KAIST가 유일하다. 신소재공학과는 교수 1인당 학생수가 평균 3명 이하. 그래서 초기부터 밀착, 심화교육도 가능하다.

두 번째는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뒤집힌 학습)이다. 학생은 스스로 지식(담당교수가 수업 전에 업로드한 강의 동영상 등)을 습득하고, 강의실에서는 교수, 동료들과 토론을 벌인다. 기존의 수업방식과는 정반대다. 정 교수는 “KAIST 학과의 15% 정도가 플립트 러닝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 통계적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특히 신소재공학과는 이를 모범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반응도 매우 좋다”고 말했다. 이 방식은 2014년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에 소개되기도 했다.

세 번째는 해외 대학과의 활발한 교류협력이다. 신소재공학과는 미국의 MIT, UIUC, 영국의 임피리얼 칼리지, 싱가포르의 난양공대 등과 MOU를 체결하고 교수 상호 방문, 교환 학생 파견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 해외 석학을 초청해 학과에 대한 정밀 평가를 주기적으로 받고 이를 교육 과정과 연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KAIST 신소재공학과는 2014년 세계 대학평가 QS 랭킹의 재료과학분야에서 세계 16위를 기록했다. 국내대학의 모든 학과를 통틀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신소재공학과 이혁모 학과장은 “QS 랭킹 평가의 절반은 평판도다. 학문적 평판도와 졸업생 평판도가 50%를 차지한다. 연구 성과의 정량적 지표, 교수 1인당 학생수 등의 평가지표가 나머지 절반”이라고 말했다.
BK21플러스 소재기반 인재양성 사업단장도 맡고 있는 이혁모 학과장은 “과거 KAIST를 비롯한 국내 최상위권 대학들은 연구 성과 등의 지표가 매우 우수한데도 국제 대학 평가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유는 국제 인지도가 부족해 주관적 평가인 평판도에서 불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KAIST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들이 국제 대학 순위에서 약진하고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대외 인지도가 상승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KAIST 신소재공학과 이혁모 학과장(오른쪽)과 정연식 교수는 MIT 박사 선후배 사이다.

따라서 KAIST 신소재공학과의 ‘QS 16위’는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룬 학문적 성과가 비로소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예로 정연식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한 초미세 나노패터닝 기술을 연구 중인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것 중 가장 미세한 크기의 나노구조체를 프린팅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신소재공학과 교수들이 세계적인 저널에 게재한 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 지수는 5.8로 세계 톱5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KAIST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2015학년도 전체 모집인원은 800명이며 전형은 크게 3가지다. 수시(일반 620명, 학교장 추천 80명, 고른 기회 30명), 정시(수능 우수자 30명), 외국고(40명)다. 학생부종합전형(종전 입학사정관 전형)인 수시는 1단계 서류 평가, 2단계 심층 면접으로 뽑는다. 2015학년도에는 730명 모집에 4356명이 지원해 약 6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KAIST는 2014학년도부터 정시로도 30명을 선발하고 있다. 당시 입학생의 표준점수합 평균이 532점으로 이공계열 최고였다. 2015학년도 지원자는 1274명으로 42.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슬로바키아에 있는 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외국고 전형으로 입학한 고은경 씨(3학년)는 “국제 공인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IB시험 45점 만점에 43점으로 합격했다. 다른 전형으로 합격한 친구들을 보니 내신이나 수능 성적만으로 뽑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원서에 드러난 열정이나 꿈, 다양한 능력도 비중 있게 평가하는 것 같다. 매년 각 학과의 인원이 바뀌는데 신기하게도 30~40명 정도가 꾸준히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KAIST 신소재공학과는 공부와 연구에만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각종 스포츠 활동이 활발하다. 매년 9월에는 연구실 단위로 팀을 이뤄 종목별 리그전을 거친 후 우승팀을 가리는 학과 대학원생 체육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있다. 교수 또는 여학생이 직접 선수로 출전하면 가점을 부여한다.

KAIST는 2014학년도부터 평점 2.7 이상이면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면제해 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등록금은 0원이다. 한재욱 씨(3학년)는 “KAIST는 철저한 상대평가다. 요즘 문제가 되는 학점 인플레는 없다. 따라서 평점 2.7 획득은 쉽다고도 어렵다고도 할 수 없다. 국가장학금으로 매달 13만 원씩 나오고 기숙사도 월 8만~10만 원만 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은경 씨는 “KAIST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다.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존중해 통금시간도 없다”고 덧붙였다.

KAIST는 연구중심의 국립 특수대학이다. 따라서 신소재공학과도 80% 이상은 KAIST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으며 일부는 MIT, 칼텍, 일리노이공대 등 해외 유명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KAIST 학부, 석사를 거쳐 MIT에서 박사 학위를 딴 정연식 교수는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많은 동문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해외 유학이 꼭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만큼 KAIST 대학원 프로그램은 우수하다”고 소개했다.

KAIST 신소재공학과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절반 정도는 국내외 기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의 박성욱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삼성, LG, 현대 등에서도 KAIST 신소재공학과 출신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태원 씨(석사 2학년)는 “아직 진로(학계 또는 업계)를 확정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KAIST 신소재공학과가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훌륭한 연구 시설에서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항상 긴장케 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안영식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