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복지 줄일 수 있을까… 못줄이면 어떤 증세 할건가 경제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덧셈만 있는 복지 셈법 바꾸고 소득세 소비세 법인세 상속세 모든 세금 성역없는 수술 필요 무상복지 ‘무책임 경쟁’ 벌였던 정치권의 결자해지가 도리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하경제 양성화, 세금감면 축소, 세수 확대만으로 5년 동안 복지예산 135조 원을 확보하겠다는 셈법은 처음부터 너무나 낙관적이었다.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벌써 3%대로 내려앉았고 디플레이션 논쟁이 촉발될 만큼 저물가 시대가 도래했는데, 4% 경제성장률에 2.5% 물가상승률을 합쳐 6.5% 경상성장률을 추정하고 세수 증가를 기대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만큼이나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진즉에 나왔다. 지난해엔 계획보다 덜 걷힌 세금이 무려 11조 원이나 된다.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월호 초대형 참사 탓으로 돌리기엔, 처음부터 부실 설계도면이었다.
지하경제 양성화엔 한계가 있다. 개인용 금고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시중에 5만 원권이 씨가 말라 간다는데, 정부가 지하경제의 전모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샅샅이 알고 레이저를 비추어 꼭꼭 숨은 검은 돈다발을 찾아내는 초능력을 가졌다 해도 획기적인 세수 확보는 가능하지 않다. 비과세 감면 축소는 조삼모사 논란을 자초하고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만 봉이냐는 국민적 공분과 저항에 부딪혔다. 기댈 곳은 경제 활성화밖에 없지만 긴 겨울을 예감한 소비자들은 지갑을 꽁꽁 닫고, 투자를 늘린다 해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 간의 고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약해졌다. 플랜 B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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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대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의 상태가 영 마음에 걸린다. “저성장의 터널로 들어선 한국경제가 얼마만큼의 증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세 번째 질문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우린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덧셈만 있고 뺄셈은 없는 복지 셈법 이젠 바꾸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증세를 해야 한다는 절충안이 교과서적인 해법으로 등장한다. 이 해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치인은 거짓말쟁이였다는 자기고백을 할 용기가 있든지, 정치인의 변신은 무죄라는 철면피가 되든지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미래세대에 감당할 수 없는 복지청구서 폭탄을 던지는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지금 벌어지는 복지 시비가 정치권의 ‘나 몰라라’ 무상복지 경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그들이 결자해지하는 것이 도리이다.
복지백년대계에는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냉철한 머리가 동시에 요구된다. 뜨거운 가슴은 한국사회가 열망하는 복지수준을 정하고 냉철한 머리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한다. 둘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냉철한 머리가 먼저라는 것은 이 길을 먼저 간 선진국들의 역사가 입증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자랑하는 스웨덴은 엄청난 복지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서 국가파산 지경에까지 내몰렸다가, 세 부담을 줄이고 무상복지는 대폭 삭감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생산적 복지모델로 거듭났다. 좌파 정부는 상속세를 폐지하여 중소기업인들의 기업하려는 의지를 북돋았고 경영난에 내몰린 스웨덴의 대표 브랜드였던 볼보는 해외매각을 할지언정 국민 세금을 투입하지 않는 확고한 재정건전성 원칙을 세웠다. 군살빼기의 고통을 거부하고 일하는 사람이나 노는 사람이나 ‘도긴개긴’인 그리스는 국가부도사태의 낭떠러지로 내몰렸다.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이유로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고 덧셈만 있는 복지를 원한다면, 그 길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엔 이미 늦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