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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얼른 친정가거라” 이 한마디…

입력 | 2015-02-17 03:00:00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31>모두가 웃는 설날




“우리 집은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명절마다 고민이 깊었지요. 조카들에게 세뱃돈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은 컸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아빠 얼굴을 보니 명절이 원망스럽더라고요.”

이완정 인하대 아동복지학과 교수가 떠올린 명절 기억 한 토막이다. 가난한 친척은 어디나 있다. 5000원, 1만 원씩이라 할지라도 조카들 주다 보면 1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이 교수는 결혼 뒤 친척들과 의논해 원칙을 세웠다. 서로 세뱃돈은 주고받지 않는다. 세배의 대가가 현찰이라는 건 교육상 의미도 없다고 봤다.

과거에 비해 명절은 빠르게 변했다. 2014년 설 연휴 기간,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은 총 26만7000명에 달한다. 국내 유명 여행지도 가족 단위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하지만 여전히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

울산이 친가인 남편에게 시집온 나모 씨(34)의 친정은 충북 청주다. 어딜 먼저 가느냐로 다투던 부부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만들었다. ‘명절 당일은 시댁에서 보내되 차례 준비는 시어머니가.’

이 원칙은 잘 지켜져 명절 전 울산에 내려오고 당일까지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음식은 시어머니가 미리 끝내 놓고 있다. 먼 길 다니며 아이까지 챙겨야 하는 며느리에게 일까지 시키기 안쓰럽다며 원칙을 이해해 준 시어머니 덕분이다. 나 씨는 “시어머니가 먼저 마음 써 주시니까 ‘친정에 꼭 가야지,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지’ 하는 생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말했다.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실제 병은 아니지만 명절 하루 친인척과 모여서 지내다 보면 발생하는 현상이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해지는 증상을 뜻한다. 고되긴 하지만 이 정도의 중증을 일으킬 만큼 가혹한 건 아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가족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배려한다면 쉽게 뻥 뚫릴 문제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작은 단위로 나누면 된다.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식탁을 닦거나 수저를 놓고, 물컵을 정리하는 것이 그 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처 내는 일도 금물이다. 특히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는 사람이 남편이다. 황현호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소장은 “가정 행복이라는 것은 부부의 행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도 중요하고 부모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번 설에는 친척들끼리 소통하는 법도 새롭게 가다듬어 보면 어떨까. ‘결혼 언제 하느냐’라는 말을 이미 수백 번 들었을 사람에게는 “요즘 직장에서 하는 일은 어떠니?”라고, 재수를 고민하는 고3에게는 “고생 많이 했네. 졸업을 축하한다”라는 말로, 취업 이력서를 쓰다 지친 사람에게는 “앞으로 어떤 꿈을 이루고 싶니”라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노지현 isityou@donga.com·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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