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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나는 과연 어떤 클래식을 남길 수 있을까

입력 | 2015-02-09 03:00:00

2015년 2월 8일 일요일 맑음. 지금의 클래식.
#144 Nas ‘The World is Yours’(1994년)




소년소녀세계명작동화, 위인전, 펭귄 클래식, 그리고 성경. 책장 한쪽을 가득 메운 전집은 형형색색이 아니었다. 흰색, 진갈색, 칠흑의 일색으로 도열한 책의 연쇄가 고전의 완고한 향기를 풍겼다. 고전은 유행을 타지 않는 영원한 명작. 시대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다. 삶은 유행(流行)하지만 그것만은 떠내려가지 않는다.

어제(7일) 오후 영화 ‘나스: 타임 이즈 일매틱’ 상영회에 갔다. 미국의 전설적인 래퍼 나스(본명 나지어 존스·Nasir Jones·42)가 데뷔앨범 ‘일매틱’(1994년·사진)을 만든 배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스냅백, 벙거지, 후드 등 각종 모자를 쓴 래퍼들이 서울 광진구 능동로 KU시네마테크를 메웠다. 영화는 ‘일매틱’ 발매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했다. 국내에는 정식 개봉하지 못했고 이번에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 씨가 주최하는 상영회 형태로 선보였다. 번역은 김 씨가, 번역 감수는 타블로가 맡았다. 에미넘의 ‘8마일’(2002년) 이후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힙합 영화였다.

매일 총소리와 죽음 냄새가 진동하는 1980, 90년대 미국 뉴욕 퀸스브리지 빈민 밀집 지역의 암울한 현실과 나스의 성장기, 랩으로 인화된 시대의 풍경을 철컹철컹 울리는 킥(kick·베이스드럼)과 스네어(snare·드럼의 작은북) 소리로 느꼈다. 나스는 “랩을 통해 거친 거리의 촉감, 소리, 맛과 냄새를 생생히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인터뷰, 뉴스 화면, 빈민지역 스케치를 리듬감 있게 편집한 이 영화 속에서 프로듀서 스위즈 비츠는 “‘일매틱’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고전의 지위를 지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 ‘난 흘러가버리기 전에 과연 어떤 클래식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스는 ‘일매틱’ 뒤 무려 10장의 정규앨범을 더 냈지만 ‘일매틱’을 뛰어넘지 못했다. 퀸스브리지의 어둠 아래서 판도라의 상자를 너무 일찍 열어젖힌 10대가 느낀 불안과 우울, 연대(連帶)에 대한 갈망,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의 광선. 그 절박한 기록은 세월과 상관없이 유효할 가능성이 크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인류애의 실패가 매년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0, 90년대 퀸스브리지가 아닌 2015년 대한민국 서울. 난 어떻게 생긴 각운과 박자로 일상의 엄혹함을 스케치할까.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