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선 전 동아일보 인턴기자
난 하루빨리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어른요”라고 답했던 초등학생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에서 벗어나 내 입맛대로 일상을 만들어 간다는 자유로움이 나를 설레게 했다. 마침내 대학에 들어가자 삶에서 내 의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70∼80%를 넘어섰다. 부모님의 울타리가 투명 울타리가 됐을 무렵 꿈에도 그리던 ‘청춘’이 시작됐다.
청춘이 생각만큼 달지 않고 쓰디쓰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생이 내 의지대로 나아가던가. 알 수 없는 변수도 많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남자친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겨우 직장을 잡았다 싶으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게 되고, 내 적성과 수준에 맞게 잘 찾아온 것인가 의심도 든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소위 ‘어른’이 되는 고지에 오르는 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영역이다. 이젠 자전거 밀어 줄 손도, 연필 잡아 줄 손도 없다. 그야말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청춘들은 이 불확실한 나날을 극복해 내는 법을 몰라서 오늘도 멘토 특강을 들으러 부단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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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을 ‘자폐의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자폐는 자기 자신에게 비정상적으로 몰입한 상태를 뜻한다.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골몰한 적 있었던가. 청춘은 어쩌면 세월이 ‘허용한’ 자폐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쓴다면 적성·능력에 맞는 일, 취미생활들이 가지치기될 것이다. 가지치기를 하고 오답 노트를 얻은 청춘은 그 다음 허들 앞에서 움츠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자전거와 연필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노유선 전 동아일보 인턴기자